<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태연구실장 송영주>
봄의 전령사 중 으뜸은 역시 꽃이다. “봄은 살아있지 않는 것은 묻지 않는다” 는 기형도 시인의 일갈처럼 꽃과 봄의 인연에 던지는 심오한 질문도 있지만, 범인들은 매화꽃, 진달래꽃, 개나리꽃, 특히 흐드러진 벚꽃의 화려함을 보면서 꽃 타령이 절로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꽃에 있어서 진정한 손님은 벌과 나비들이다. 벌과 나비는 식물에게서 꿀과 꽃가루를 얻고 식물은 이들의 ‘중매’로 종자를 얻어 다음세대를 이어가는 깊은 공생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의 75%가 이들 덕에 종자를 생산하고 있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자연계의 생태시스템인 것이다.
결국 봄의 진정한 찬가는 벌과 나비가 분주히 꽃과 교류하면서 내는 역동의 소리에서 찾아야한다. 이들의 역동적 소리가 침묵하는 소위 ‘조용한 봄'의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 인간과 자연의 순환 고리도 멈추게 된다. 보이지 않는 대재앙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용한 봄’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은 이미 55년 전 미국의 유명한 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통해 경고된 바가 있다. 이때 카슨의 주장은 과학적 산물인 화학오염물질들 중 일부가 자연환경 내에서 분해되지 않고 남아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봄이 왔음에도 꽃이 피지 않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는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외에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그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의 평균기온은 0.75℃ 상승했고, 한반도는 2배가 넘는 1.8℃ 올라갔다. 지금 이 상태라면 21세기말에는 3~5℃가 상승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남한의 일부가 아열대기후로 변하는 것이다.
단순히 온도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처럼 아침저녁의 온도차가 크게 벌어지고 하늘을 덮은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봄이 봄 같지 않은 이상기상의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특정지역에서 식물과 곤충의 생태적 서식능력의 저하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종족의 계승을 위하여 상호 생활주기가 일치되도록 환경적 신호반응을 통해 공동으로 진화해 온 생태계 시스템에 대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소위 생태계 엇박자(ecological mismatch)가 그것이다. 예컨대 식물은 꽃이 피어야 꿀을 생성할 수 있고, 벌과 나비는 날을 수 있는 만큼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꽃과의 교우에 성공할 수 있다.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시기를 잘 조율 하지 못하고 먼저 꽃을 피우거나 날개 짓을 하는 단계까지 성장해 버리면 둘 사이의 조우는 실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한 연구기관은 ‘기후변화로 인해 식물의 개화기간이 4~5일 빨라지는 반면, 꿀벌의 날개 짓은 7~10일정도가 빨라지는 엇박자가 이들 멸종위기의 한 단초가 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봄에 피는 꽃들 사이의 질서도 무너지고 있다.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피고 지는 시기가 들쭉날쭉 거리고, 어떤 때는 한꺼번에 뒤엉켜 피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고 그 끝자락에서 조급히 봄이 온듯하다가 다소 긴 여름으로 이어져버린다.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는 우리나라의 사계절 양상이다. 조용히 질서를 기다리던 벌과 나비의 경우 이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면 상호 엇박자로 인한 침묵만이 흐를 수밖에 없고, 먹이를 찾지 못하면 개체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과거 50년 동안 벌은 개체수가 37%, 나비는 31%가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0년대에 40만군 이상의 꿀벌 봉군(蜂群)이 최근 5년 사이 75%가 줄어들었고,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나비의 개체 수는 약 34%나 사라져 갔다.
물론 벌과 나비가 사라지는 이유가 기후변화에 의한 생태 엇박자 하나만의 영향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구온난화, 한랭화, 건조, 사막화, 해수면 상승, 외래종 이입 등을 동반하면서 시·공간적으로 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지구 온난화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는 특정식물의 꽃가루 단백질 함량을 감소시켜 이를 취하는 벌의 개체 수 감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기후변화는 그 자체가 생태계의 다중 교란인자(攪亂因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촉진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꽃과 벌의 엇박자를 바로 세워주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도 산다. 그 해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까운 우리 자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