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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福國家



<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엄윤상>

‘행복’의 의미를 찾아봤다. 사전적으로는 ‘생활에서 기쁨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고, 헌법 제10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 헌법에 행복추구권이 규정된 때는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 헌법부터이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통하여 행복추구권의 내용을 구체화하였다. 추상적 법 원리에 머물지 않고 기본권임을 인정하였으며, 개별적 권리가 아니고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을 갖는 권리로 보았다. 그러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국가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국가는 방해해서는 안되는 권리로 보았다.

행복추구권(幸福追求權)을 소극적으로 이해하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과거 개인의 자유가 수시로 박탈되던 시기에는 의미가 있었겠으나, 생존권과 복지가 중요해진 현대국가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처럼 행복을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만족이 동시적으로 충족된 상태’라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 대리기사의 일상을 통해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오늘도 오후 1시가 다 되어서 잠에서 깨어나 출근할 준비를 한다. 아내는 출근했고 딸도 이미 등교했다. 이런 저런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오후 4시에 집을 나선다. 오늘은 모실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대리운전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몇 몇 대리운전업체에서 업무를 차단해서 소위 ‘콜’이 오는 숫자가 현격히 줄었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오후 8시가 넘어서 첫 손님을 모실 수 있었다. 다행히 친절한 손님이다.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며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르신은 힘내라며 2천원을 더 얹어주신다. 순간 ‘행복’한 마음이 든다.


다시 기약 없이 ‘콜’을 기다린다. 콜을 기다리며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지갑에서 꺼내어 보며 미소 짓는다. 그도 한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로 인해 그와 가족들이 감내해야 했던 경제적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동반 자살도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와 딸은 현명했다. 가정의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몰아가지 않았다. 아내는 가정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무척 애썼고 딸의 재롱도 그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아내와 딸, 그리고 ‘행복’을 위하여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일이 대리운전이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대리운전을 하면서 수많은 대리운전 기사들의 고단한 삶을 마주했다. 그는 그나마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저녁 10시가 조금 넘어서 두 번째 ‘콜’이 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손님이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둘러야 한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루 동안 5명의 손님을 대신해서 운전을 했고, 대리운전업체에 30%를 떼어주고 나니 4만 원을 손에 쥐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서 오늘 그의 일이 끝났다.》

그는 요즘 가난하지만, 아내와 딸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 한다. 그리고 대리운전노조 활동을 하면서 노조원들의 권익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행복’해 한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것인가,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것인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다. 복지에 대한 공약이 넘쳐난다. 그 공약이 지켜진다면 우리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19대 대통령은 과연 대리운전을 하는 ‘그’와 가난한 서민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만족이 동시에 충족되는 ‘행복국가’가 필자만의 꿈이 아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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