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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寶庫 김제, 문화재 전담팀 필요



<본지 국장 김정대>

도내 14개 시군은 각각 저마다의 유구한 역사를 문화재가 있다. 문화와 문화재는 그 도시의 품격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그만큼 문화와 문화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이를 체계적으로 담당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각 지역마다 처한 인문적, 지리적 환경 속에 저마다의 특색 있는 문화발전을 이뤄냈다. 지역의 문화와 문화재 수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와 문화재가 우리나라 역사의 한줄기를 대표하기도 한다.


 
우리역사를 보면 미래의 미륵이 출현해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미륵신앙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희망이었다. 이에 미륵을 자처하는 세력가들이 나타나기도 했고, 미륵신앙을 통해 백성들의 지지를 더욱 확고히 한 경우도 있었다.

후백제의 최대 실력자였던 견훤이 금산사를 미륵의 성지로 보호하기 위해성을 쌓아 군사를 주둔시킨 것도 그 같은 경우다. 김제 금산사만 해도 국보와 보물이 10여점이나 되는 보물창고이기도 하지만 금산사가 가지고 있는 그 상징적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이다.


 
왜 금산사 주변엔 민족신앙이라 불리우는 증산교, 대순진리교 등의 성지가 몰려있을까? 왜 금산사 주변엔 초기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수류성당과 초기 개신교를 받아들였던 금산교회, 그리고 역사가 깊은 원불교 교당, 동학농민운동의 꿈을 실현하려했던 원평집강소 등 문화자원들이 몰려있을까?

이 의문의 해답은 바로 금산사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미륵신앙의 파급력에 기인한다. 미륵은 백성들의 희망이었다. 나라가 어지럽거나 어려울 때, 극심한 시대적 변화가 있을 때 미륵신앙이 작용했고 그 미륵의 성지는 금산사가 되었다. 후백제 견훤은 금산사를 통해 민심을 결집시키려 했고, 조선중기 정여립은 금산사 인근 제비산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으며,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미륵신앙은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데도 수월한 지역적 정서가 반영돼 금산교회와 수류성당을 자리 잡게 했다. 이렇게 김제의 금산사와 미륵신앙은 우리역사 변혁의 시기마다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고, 우리나라 대표적 정신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


 
김제의 물질문화도 마찬가지다. 근대이전 경제중심이던 농경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벽골제가 있고, 조선시대 지방행정과 교육을 담당했던 김제관아와 향교가 함께 보존된 곳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다.


 
김제시의 문화재는 총 77점으로 전라북도 내에서 문화재보유건수로도 상위권이다. 문화재는 그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수준을 나타내는 증거다. 지난 10년간 김제시의 문화재 행정을 살펴보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난 10년 동안 20여점이 넘는 문화재가 발굴되고 지정된 것은 이를 증명한다. 금산사의 템플스테이는 전국 최고의 관광상품으로 인정받고, 지난해는 백제부흥운동의 임시수도였던 피성의 흔적을 밝혀 새로운 백제사의 단서를 제공했다.


 
그간 논란이 되었던 백강구전투, 기벌포전투, 진포해전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위치비정에 단서가 될 수 있는 길곶 봉수대 주변을 조사해 그 지역의 중요성도 밝혀진바 있다. 김제 관아는 외삼문과 사령청 호적고의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지방행정 치소로서의 원형이 어느 정도 갖춰질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 보존이라는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꿔 문화재활용사업인 문화재 생생사업, 향교서원 활용사업, 전통산사 문화재 활용사업이 전북에서 유일하게 모두 공모에 선정돼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문화재는 그 지역의 역사와 품격을 나타내는 거울이다. 때문에 각 지자체마다 문화재 전문부서와 전담계(팀)를 둬 발 빠르게 문화재행정을 이끌어가며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런데 김제시는 문화재 전담계(팀)가 없이 문화시설계(담당)로 운영된다. 다양한 업무와 병행해 문화재 행정을 이끌고 간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은 담당공무원들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칭찬해줄 일이다. 만약 문화재 전담계(팀)가 만들어진다면 김제시의 문화재행정은 더욱 선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가 수많은 외침과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도 나라를 잃지 않았던 것은 우리역사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자긍심으로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지키려했고 목숨 바쳐 지켜냈다. 새만금시대를 열어갈 김제의 밑거름은 시민들의 자긍심이며, 그 자긍심은 외부의 시각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김제의 역사와 문화재임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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