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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겟돈(Bananageddon) 과 생물다양성(生物多樣性)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태연구실장·농학박사 송영주>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생물종다양성의날(International Day for Biological Diversity)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각종 생물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자는  취지의 생물다양성협약에 대한 발효일을 기념하여 매년 5월22일에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바나나가 우리 곁에서 사라질 위협에 처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60년대 유일한 재배품종이던 ’그로 미셀‘을 멸종수준으로 몰고 간 푸사리움 옥시스포룸이라는 곰팡이 변종에 의한 피해 때문이다.

바나나는 특성상 종자가 아닌 뿌리줄기이식에 의한 번식을 한다. 모두 같은 유전적 소질을 갖은 쌍둥이인 셈이다. 이로 인해 대량생산은 가능하지만 특정질병에 감염되면 감염확산이 빨라져 생존에 치명적 손상을 입기 쉽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력으로 병 발생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야생종 중에서 새로운 씨 없는 변이종(變異種)을 찾지 못하면 수년 내에 현재 재배되고 있는 ‘캐번디시’ 품종도 제2의 ‘그로미셀’ 품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다.

자연생태계 내에서 생물들은 유전형질들이 끊임없이 섞이는 변이활동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 이에 취약한 유전자군은 소멸되고, 이를 견뎌낸 유전자변이 개체들은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자연생태계의 순환이치이다. 바나나처럼  단순화된 유전자군(遺傳子群)을 보유한 집단은 환경적응성이 떨어져 최악의 경우 멸종 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이다.

유전자원의 다양성은 생물다양성과 직결되어 있다. 자연생태계의 다양한 생물자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원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용한 유전자원을 보존·확보하고 권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92년 유엔은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을 제정하였다. 또한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유전자원의 이용과 관련된 소위  「나고야 의정서」를 채택한 바 있다. 나고야 의정서는 유전자원에 대한 접근 및 그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제공국과 이용국가 간에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국제협약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기업이 중국의 유전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승인을 받고 사용해야하며, 이들 유전자원을 사용함으로써 기업 등이 얻는 직·간접적 이익을 계약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고야의정서 비준동의안과 이를 이행할 이른바 「유전자원의 접근·이용 및 이익 공유에 관한법률」(유전자원법)이 지난 3월까지 모두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생물자원에 대한 국제적 규범을 따르는 국가로서 위상을 갖추고 있다. 자연 생태계의 다양한 자원을 보호하고 이를 이용하는 노력을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른바 생물자본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비해야할 사항은 많다. 먼저, 생물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국제 질서에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제 무분별한 바이오 헌터(Bio-hunter) 시대는 끝났다. 무작위로 생물자원을 수집해 들여 올수도 없지만 들여온다 해도 부적절한 사용이 발각되면 국제적 망신만 당할 뿐이다. 생물자원에 대한 글로벌 시대의 감각으로 국제협조체제에 부응해야 한다.

이 분야에 능통한 전문인력도 키워야한다. 자원의 유용한 가치를 알아내는 것, 이를 이용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는 것, 그리고 국제적 제도와 규제를  체계화 시키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새로운 제도와 체제에 대응하고 그 의미와 효과를 확산시킬 수 있는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국내 생물자원에 대한 R&D 투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이다. 실제 우리나라 바이오, 제약, 화장품, 식품분야 기업의 70% 이상이 해외생물자원을 이용하고 있고, 이중 50%이상은 중국의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국내의 생물유전자원, 전통지식만이라도 보유현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조사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자원의 잠재성을 염두에 두고 수행하는 장기적 과제라는 인식하에 그만큼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자원부국의 길은 지속적인 R&D 투자와 결과를 기다리는 인내 없이는 얻어질 수 없는 힘든 관문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다시 바나나 이야기로 돌아오자. 원래 바나나는 씨가 많은 야생과일이지만, 자연계 내에서 씨 없는 변종이 나타난 것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도록 재 개량한 것이다. 자연이 준 큰 변이선물이다. 우리는 지금도 씨가 없으면서 병에 강한 또 다른 변이종을 자연 생태계 내에서 찾아내길 희망하고 있다. 여의치 못하여 종말을 고하는 바나나겟돈(Bananageddon)이 된다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일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못한 불행 또한 현 세대의 책임이다.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생물다양성은 인간생존에 필요한 보험이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거’라고 말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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