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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자, 아주 가끔은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박여범>

아주 가끔은 우리들 ‘자신을 위로하는 날’이 필요하다. 늘 많은 세상일과 사람들과의 ‘찌들림’ 아닌 ‘고통’을 참는다. 많은 시간을 과거라는 이름 속에 묻어두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다 볼 시간이 많지 않다. 가족과 직장, 사회를 염려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 얼마나 슬프고 짜증나는 일인가? 이런 짜증이 스트레스로 발전하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성인병과 친구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시인 이해인은 ‘나를 위로하는 날’에서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자신이 자신을 위로한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자신을 위로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삶은 힘들고 지쳐가지만, 그래도 힘이 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 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 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시인 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

누구나 자신의 ‘허물’과 ‘약점’에 잠 못 들던 그 ‘쓰라림’에 힘들어 한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던 그것들이 벌거벗은 채로 세상에 민낯을 들어낼 때는 정말 죽고 싶은 마음 뿐이다.

이럴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이제부터 잘 하면 되잖아//’라는 시구처럼, 자신을 위로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질책하며, 고통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너무나 소중하지 않은가? ‘//조금은 계면쩍지만/내가 나를 위로하며/조용히 거울 앞에 서서//’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을 가져보자.

가족을 향해, 친구를 향해,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사회를 향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그 어떤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 해도 마음과 의견이 일치될 수 없는 사람에게 ‘동그란 마음’으로 활짝 웃어주는 여유를 가지자.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썩어문드러졌다 해도 ‘활짝 웃어주는 마음’은 남에게 먼저일 수 없다. 위의 시처럼,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 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출발이 ‘나’ 자신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주어진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어찌 타인을 사랑하겠는가?

내면의 위로와 준비로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져 가기를 희망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남에게 주기 전에 ‘가끔은 아주 가끔은’ 자신을 위로하는 날로 함께 해보자.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출발점이라는 것을 말이다.

망설이지 말자. 주저하지도 말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자. 무슨 동그라미라고 눈을 동그랗게 치켜세우지 말자. 바로 ‘나를 위로하는 날’ 이다. 동그라미가 준비되면 계획을 만들어 실천에 옮겨보자. 나만의 특별하고 독특한 ‘위로’의 로드맵으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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