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한국수의외과학회 회장 김남수>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신생아 출산율이 최하위를 나타낸다고 한다. 결혼으로 가정을 형성하여도 자녀를 겨우 한두 명 낳을 뿐이며, 언제부터인지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겪게 되는 자녀문제는 핵가족화로 인해 외톨이로 성장하며 부딪치는 대부분의 일상과 관계의 부족에서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이제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치매환자의 증가와 독거노인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사회가 전체적으로 지혜를 모아 해결해 나가야 될 일이라고 생각된다.
작년 이 때쯤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발신지가 미국, 그것도 라스베거스였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는 스팸메일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주소가 아니면 잘 읽지 않았는데 메일 제목이 “미국에서 한 학생이 전공 관련 문의 및 진로상담 요청 드립니다.”라서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되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딸아이에 대하여 엄마가 간절한 마음으로 보내온 내용이었다. 딸인 레이첼은 이제 만 20살로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인 브라운대학의 3학년에 재학 중인데 학부과정을 마친 후 미국 제일의 수의과 대학인 데이비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수의과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다고 하였다. 엄마는 레이첼이 내성적이며 조용한 성격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못하여 미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여간 걱정이 아니라며 동물을 좋아하는 레이첼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길 당부하셨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우리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동물의료센터에서 동물을 보살펴주는 봉사활동과 관련된 실습활동을 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관계를 맺어가는 경험도 병행하였다.
레이첼의 엄마는 어려서부터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딸을 위하여 ‘해피’라는 강아지를 입양하였는데 학교친구보다 더 의지하고 좋아하며 놀아주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동물에 관한한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이야기하고, 특히 좋아하는 강아지에 대한 풍부한 화제는 대화의 중심에 서게 되는 자신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있어서 동물친구는 풍부한 감정을 가지게 하고 학교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동물친구와 함께한 다양한 경험은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러 가지 형태로 해소할 수 있는데, 이는 동물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사랑을 베풀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 정서가 안정되고 사회화가 잘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축소된 인생경험과 생명현상 및 생명존중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동물친구를 통해 알게 되는 새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롭고 경외스러운 경험은 이후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희노애락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의 경험으로 그야말로 산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의 주의력 결핍을 동반하는 과잉행동증후군이나 자폐증, 학습장애 및 행동장애 등에서 동물 친구의 긍정적인 역할은 이미 많은 연구 등에서 증명이 되었다.
적당히 살이 찐 강아지 ‘복실이’는 눈이 참 예뻤다. 전북대학교 앞 덕진동에 사신다는 너그러운 모습의 할아버지는 놀이터에서 손가락을 다친 손주를 보시듯 ‘복실이’를 쓰다듬으면서 말씀하신다. “요놈이 요즘 밥을 잘 안 먹어, 더운 날씨 때문인가? 야가 이러니 나까지도 밥맛이 없어진다니까!” 일흔 넷, 꼬박 5년을 누워계시던 할머니가 떠나시고 혼자 사신다. 특별히 입맛도 없으시고 살맛도 나지 않아서 끼니 거르는 때가 많았다. 경기도에서 부부교사로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안부 전화로 “식사 하셨는지요?” 물어오면 그 날 한 숟가락도 안 떴지만 “응, 했어, 걱정 마라” 하신단다. 얼마 전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봉사활동 학생들과 덕진동사무소 직원들이 집에 찾아와서 강아지 입양을 권할 때 만 해도 왈칵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지만 텔레비전 외엔 아무도 없는 집에 그래도 강아지라도 있으면 좀 낫지 싶어서 신청하셨단다. 이렇게 맺은 복실이와의 인연은 밥도 함께 먹고 운동 삼아 주변을 산책할 때도 친구가 되어주는 그야말로 할아버지의 유일한 말동무이며 밥친구라고 하셨다. 할아버지한테는 멀리 사는 아들 며느리보다는 서로 걱정해주고 함께 밥 먹으면서 살아가는 강아지‘복실이’가 더 가깝고 정이 느껴지는 것이리라.
성년기와 장년기 동안에는 가정과 직장에서의 위치와 책임감을 자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시행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은퇴 이후엔 달라지고 특히 친구와 가족구성원들의 이별로 인해 가중되는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혼자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고독감은 노인문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종종 노년기에 느끼는 상실감과 소외감은 우울증과 함께 고독사에 이르기까지 한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들어섰을 때 꼬리치며 반겨주는 개나 혼자 크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고양이는 단순한 애완동물 이상의 의미를 준다. 식사할 때마다 혼자서 식사하는 것이 싫은 사람들에게는 규칙적인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어 밥 친구로서는 그만이다. 또한 노년기의 생활은 운동량이 부족하기 쉬운데 운동할 때나 산책할 때 말동무가 되어줄 수 있는 반려동물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이렇듯 반려동물은 이미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와서 때로는 가장 다정한 친구로서 혹은 귀염둥이 손주로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혼밥, 혼술의 시대에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밥친구와 산책 시 곁에서 함께 걸어주는 말동무가 진정한 반려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늦은 밤에 아파트 문을 혼자서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를 반기는 이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