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동화중학교장·전북교총회장 온영두>
요즈음은 버르장머리 없고 기본 의식이 부족한 아이나 젊은이들,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참 많이들 봅니다. 이들 대부분은 주변을 무시한 채‘나’위주로 살아가는 경향이 짙습니다. 철저히 이기적 생각과 의식으로만 뭉쳐져 있어 어떤 충고나 훈계도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석해 보면 이들은 성장기 때 부모의 과보호 하에서 자랐거나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요구만 하면 무엇이든 부모가 다 들어주어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부모의 손에서 모두 해결되었던 경제력을 갖춘 집안의 아이들입니다. 반대로 이들 중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많습니다. 가정의 불화로 인해 화합의 모습을 체험하지 못한 채 성장하다 보면 불만과 반항이 많아지고 그래서 삐뚤어진 사고의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이러한 측면을 보면 가정환경과 학교교육은 그 영향력 면에서 대단합니다. 패륜과 범죄의 원인은 대부분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관심정도에서 대부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부모,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역할은 막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장기 때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기사를 접하다 보면 안타깝고 서글픈 생각이 앞섭니다. 공부 잘한 한의사가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 공부시간에 떠들지 말라고 충고하자 선생님의 복부를 무자비하게 가격한 어느 중학생 사건 등등 인륜(人倫)을 찾아 볼 수 없는 패륜(悖倫)의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습니다.
자녀나 학생의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는 과정에서 애틋한 소중함이 있을 때 결과의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정의 고생이 안쓰럽다하여 보호자가 다 해결해 주어 편안한 결과를 맞이하다 보면 내면에 의타적 습관의식이 쌓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려움을 당하다 보면 스스로의 극기의지보다는 의존적 성향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어느 시골마을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몸이 너무 야위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어느 날, 랍비가 꿈에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네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 했습니다. 그때부터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매일 바위 밀기를 8개월 간 했습니다. 그동안 옮겨진 것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었습니다. 속은 기분으로 랍비를 원망했습니다. 꿈에 랍비가 나타나 말합니다. “나는 너에게 바위를 그냥 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했지 바위에 변화를 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렴.” 그러자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의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변한 다른 남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결과에 초점을 맞춥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도 내 자식은 잘 살고 잘 해낼 것이라 결과를 속단한 나머지 어려운 과정을 무시하고 도와주기에 급급합니다. 바위 미는 남자도 누군가 미는 과정을 도와주었다면 건강회복의 결과는 있었을까요? 그러니‘하고 있는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과정 그 자체에서 많은 체험요소를 갖게 하면 그것이 배경지식과 지혜가 되고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녀교육이 어떤 것인지 자녀사랑에 앞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요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