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박여범>
무더위 속에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여전하다. 잠시 교정 그늘을 찾았다. 새들의 정다운 지저귐과 꽃들의 향연이 그윽하다. 그 곳에는 어느새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 숲과 새들과 저 녀석들의 함박웃음이 ‘그리움’이 될 것이다.
전화벨을 눌러 댄다. 경기도 어느 요양원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어머니 안부를 여쭙기 위함이다. 다정한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부와 어머님의 근황을 전해 듣는다. 식사를 잘 하지 못하시고, 기억력도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이다. 그리움으로 그립다. 자식으로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마음만 짠하다. 구십을 바라보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십오 년 전에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신 어머니,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려 한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모든 자식들은 어머니를 떠올리면 누구나 눈시울이 붉어질 것이다. 자식의 얼굴을 기억해 주지 못하는 어머니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간다.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 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나약하며,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의 연속임에 가슴 아프다. 그리워진다. 그립다.
돌아다보면,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그립다. 고향의 정든 집이 그립다. 마음껏 내달리던 동네 어귀가 그립다. 지금은 콘크리트 바닥이 되어 버린 그 오솔길이 그립다.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가 그립다. 그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시절, 참으로 시골을 떠나고 싶었다. 도시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논으로 밭으로 내몰리던 어린 시절과 농사를 도와 드리던 기억은 힘들다는 것이었다. 힘이 들면 들수록 더욱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곳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움으로 오늘도 또 다른 그리움을 만들자. 누구에게나 말없이 미소로 함께 할 그리움이 있다. 그 그리움을 더욱 가득 채워가자. 물질적인 풍족함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리움’이 그리워지도록 추억을 만들자. 메모지에 몇 자 적어본다.
그립다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그립다
엄마 손 잡고
꼬불꼬불 무지개 오솔길
그립다
그립다
향긋하다
그립다
고향의 똥 냄새 (민초 박여범, ‘그리움으로 그립다’)
제법 학교 숲이 푸르다. 그늘과 함께 시원함도 여유도 준다. 그 여유 속에 떠오르는 얼굴은 단연 ‘어머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가 점점 ‘엄마’가 된다. 가슴 저 밑에 아픈 덩어리, ‘엄마’다. 그 ‘엄마’가 오늘 그리움으로 그립다.
수업시작 예비음악이 흐른다. 짧지만 행복한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다. 예비음악이 흐르고,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사랑스런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도 그 많던 선배들처럼 저 교문을 향해 새로운 세상을 향해 호기심 가득 달려갈 것이다. ‘그리움’이라는 또 하나의 씨앗을 남기고 말이다. 그리움으로 그리운 시간이다. 어머니가 그립고,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그립다. 그 그리움으로 오늘도 나는 교실에 들어간다. 녀석들과 행복한 그리움을 쌓아보련다. 잠이 밀려오는 5교시 수업이다. 쉽지 않은 수업이 될 듯하다. 그래도 그 수업이 그리워지도록 그리움을 만들어 보자. 그립다. 그리움으로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