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관·농학박사 박태일>
원문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이 날에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의미로 1905년 11월 20일《황성신문》의 주필인 장지연 선생이 올린 글의 제목이다. 장지연은 이 글에서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을 규탄했다. 나라 잃은 설움의 역사를 다시금 통곡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穀)에선 우리나라 곳간의 현실을 큰 소리로 부르짖어 국민들께 알리고 싶다.
국내 곡물자급률은 2015년 기준 23.8%, 식량자급률은 50.2%이다. 곡물자급률은 국내에서 연간 소비되는 총 곡물사용량 대비 자급정도이고, 식량자급률은 국민이 먹는 순수한 식량의 자급수준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곡물 수입량은 약 1천6백만 톤(’15)으로 세계 5위의 수입대국이다. 우리나라 한해 쌀 생산량 4백만 톤인 것을 감안하면 4배에 달하는 그야말로 대곡(大穀)이다.
우리나라 국민 일인당 쌀 소비량은 1990년 119.6kg에서 2015년 62.9kg로 거의 절반수준으로 감소한 대신 쇠고기 소비량이 4.1kg에서 10.8kg, 돼지고기가 11.8kg에서 21.5kg, 닭고기는 4.0kg에서 12.8kg로 2배 내지는 3배 증가하였다.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쌀 대신 고기가 식탁위에 올라온 셈이다. 문제는 고기소비가 증가하면서 가축이 먹는 사료의 원료곡물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산에 의존하는데 있다. 가축들은 우리 땅에서 길러지기만 할 뿐, 가축이 먹는 사료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들여온다는 뜻이다. 수입곡물 중에 식용을 제외한 사료원료곡물 10,668천 톤('15)은 옥수수 8백5만 톤, 밀이 1백4십9만5천 톤, 콩이 1백4만1천 톤, 기타 곡물이 8만3천 톤이다. 이것은 식가공용을 제외한 순수한 배합사료용 원료곡물이다.
고기소비가 증가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곡물재배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 기준 농경지에서 논이 90만8천ha, 밭이 77만1천ha로 총 1백67만9천ha이다. 이 중 논을 이용해 이모작으로 재배하던 보리, 밀 등의 맥류는 1970년 83만4천ha에서 4만4천ha로 약95% 감소하였고, 1년에 한번 경작하는 농가들이 늘면서 수지타산이 없다며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도 속출하게 되었다. 휴경지로 변해버린 농경지는 점점 다른 용도로 침해돼 국내농산물 생산기반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번 무너진 경지를 복원하는 것은 3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국내곡물은 남아서 처치 곤란이다. 금년에도 재고미(在庫米) 39만톤을 사료용으로 방출한다고 한다. 또한 논에 이모작으로 1만ha 남짓 재배되는 밀도 소비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쌀 다음가는 제2의 식량이지만 사료용 밀을 포함 국내 수요량의 불과 0.3%만을 충당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곡물의 계획생산이 불가피하다. 여름철에는 주식인 밥쌀용과 사료용을 구분하여 밥쌀용은 양질의 단지를 조성하여 생산하고, 그 외에는 용도를 다양화하여 경제성을 맞추고, 최소의무 수입쌀은 주정용 등 가공용으로, 이모작 겨울철 유휴농경지에는 사료 원료곡(原料穀) 맥류와 조사료 생산으로 들녘별로 판을 짜야한다.
생명산업인 곡물을 경제적인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국내외 곡물 여건을 보면 더욱 절실하다. 가장 큰 변수는 인구대국 중국의 시장개방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고기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세계 곡물시장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지금은 국내산업의 경제적 우선순위, 수입과 국내산 농산물의 가격차이로 인하여 소홀히 하고 있지만, 최근의 기후변화와 세계 곡물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불안정한 세계 곡물시장에 휩쓸리지 않고 식량주권기반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 전반적인 곡물생산 및 활용방안과 식량자급률의 마지노선을 법제화 하는 등의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식량산업의 경제적 효과는 물론 곡물자급도 제고, 겨울철 맥류재배를 통한 이산화탄소의 고정과 공기정화, 국민의 정서함양 가치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