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대학교 교수 백소현>
계절의 여왕인 오월부터 장미는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다. 장미 재배역사는 매우 오래 되었는데,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약 3,000년 전부터 관상용으로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오월 곡성에서는 일곱 번째 세계 장미축제가 개최되었다. 꽃의 여왕 장미축제인 만큼,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여 수만 송이의 장미향에 흠뻑 취한다. 하지만, 그 많은 장미꽃 중에서 유독 발견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파란색 장미이다.
장미가 재배되기 시작한 후, 육종가(育種家)들은 수많은 교배를 통하여 1만5천종 이상의 다양한 장미를 개발하였다. 원래 장미의 색깔은 흰색과 붉은색이었는데, 오늘날 육종을 통하여 노랑, 주황, 분홍 등으로 다양하게 육성되었다. 하지만, 파란색 장미만은 개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파란 장미를 ‘신비로움’, ‘불가능’의 상징으로 여기고, 파란 장미를 얻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화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수국, 도라지, 팬지, 페튜니아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 주변에서 파란색 꽃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은 듯하다. 파란색 꽃을 보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장미를 포함한 대부분의 식물들이 ‘델피니딘 (Delphinidin)’이라는 파란 색소를 전혀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파란 색소인 델피니딘을 합성하는 유전자가 장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6월 30일자에 일본 주류회사인 산토리는 계열사인 플로리진에서 세계 최초로 ‘파란 장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는 놀랄만한 빅뉴스를 발표하였다. 마침내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신품종 화훼류를 개발하는 회사인 플로리진(Florigene)은 1986년 파란 장미 개발을 시작하여 18년 만에 연구비 약 400억원 상당을 투자하여 전 세계가 놀랄만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이번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끈 플로리진의 존 메이슨 박사는 “장미에는 원천적으로 파란색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육종을 해도 파란 장미가 나올 수 없지요. 따라서 생명공학기술(유전자 변형기술)을 이용하지 않고는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빨강, 노랑, 주황색 물감을 다양하게 섞어도 파란색이 나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연구팀은 팬지꽃에서 찾아낸 파란색소를 만드는 유전자, 즉 ‘블루 진’(Blue Gene)을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장미에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놀랄만한 성과인 파란 장미는 우연히 개발된 것은 아닌 듯하다. 플로리진은 이미 1994년에 세계 최초로 ‘문더스트’(Moondust)라는 파란 카네이션을 개발하여 1996년부터 시판하였는데, 문더스트는 최초로 상업화된 유전자변형(GM) 꽃이다. 현재 블루 카네이션은 전 세계에 고가로 수출되고 있다. 한편, 지난 1,000여 년간 수많은 육종가들의 꿈의 도전과제였던 파란 장미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플로리진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검은 장미’ 개발이라고 발표하였다.
지구 온난화, 세계인구 증가, 에너지 고갈 등 인류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의 해결 수단으로 생명공학기술이 대두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많은 선진국들이 생명공학기술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GM종자 개발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하여 2015년 국영기업인 ‘중국화공’을 통하여 52조원을 투자하여 ‘신젠타’라는 글로벌 종자회사를 인수하였다.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GM 종자시장으로부터 자국의 농업기반을 보호하고 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GM 종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라 생각된다. GM작물 재배면적은 불과 20년 만에 100배 증가하였으며, 전 세계 종자시장 중 4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국가 연구기관인 농촌진흥청에서 GM 벼를 개발하고 안전성 심사를 추진한다고 하여 시민단체 등은 극심한 반대를 하고 있다. 전 세계 GM 작물개발을 주도하는 ‘몬산토’, ‘신젠타’ 등이 개발한 제초제, 해충 저항성 GM 작물은 농업생산성 증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농진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레스베라트롤 합성 벼’는 기존 GM 작물과 다르게 생산자인 농민에게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성 질환(당뇨, 고지혈증, 뇌졸중 등) 예방 및 치료제를 비롯한 의약품소재 개발과 피부 주름개선 및 화장품 소재 등 고령화 사회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약리 기능성 쌀이라는 점에서 그간의 GM 작물과 결을 달리한다.
GMO 작물은 여전히 논란과 우려 속에도 지구촌이 당면한 식량, 에너지, 기후변화, 노령화 문제 등에 해결책의 하나로 조명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故 박태준 회장이 철강 산업을, 故 정주영 회장이 자동차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였다. 선진국들의 냉소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뚝심을 갖고 추진하여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를 도출하였다. 따라서 작금의 한국사회에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판단이 아닌, 고 정주영, 고 박태준 회장의 지혜가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때인 듯 싶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과학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불가능’이라는 꽃말을 가졌던 파란 장미를 이제는 ‘희망’, ‘기적’이라는 꽃말로 바꾼 것처럼 말이다. 여건만 주어진 다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블랙 로즈’가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 땅에서 개발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