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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Ⅱ



<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엄윤상>

보통사람 3 : 검게 그을린 얼굴의 그가 작업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투박한 손으로 조카의 손목을 잡고 머뭇거린다. 어찌해야 하나 망설이는 눈치다. 편하게 앉힌 뒤 자초지종을 들었다.

조카는 그의 누이의 딸이다. 누이는 도박과 폭력을 일삼은 남편과 일찍이 이혼하고 혼자서 조카들을 키우다 정신분열증에 걸렸다. 일을 할 수 없게 된 누이를 대신하여 조카가 실질적 가장이 되었다. 조카는 14살 때부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온갖 험한 일을 해야만 했다. 10년 이상 동안 지속되어온 고된 생활 속에서 조카도 지쳐갔다. 조카도 우울증, 불면증, 반복생각, 충동조절장애 등의 증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로 인해 그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었다.

조카에게 유혹이 찾아왔다.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바로 삭제했어야 했다. 체크카드를 빌려주면 한 달에 200만 원을 주겠단다. 전화를 걸었더니, 자신은 수입주류 도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세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크카드 대여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합법적인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누차 안심시켰다.

경제적인 곤궁은 조카의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한 달에 200만 원’, 이 소리만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조카는 그가 시키는 대로 체크카드를 보냈다. 그러나 들어온다던 돈은 일원 한 푼 들어오지 않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조카의 꿈은 간호조무사다. 어머니를 돌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꿈이 되었다.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서는 징역형 전과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와 누이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다정했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도 누이와 조카들을 돌봐왔다. 그의 눈빛이 간절하다.

그는 석재 일을 하고 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에는 공사판에서 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어서 제법 돈도 모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2억 3천만 원의 부도를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믿었던 친구에게 8천만원 사기를 당했다.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를 팔아서 빚을 일부 갚았다. 그리고 8년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매달 200만 원씩 갚았다. 빚 갚으며 자신과 누이의 가족들 굶기지 않고 자식과 조카들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죽어라고 뛰어야 했다. 버스비가 아까워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니던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그의 간절함과 노력 때문일까. 그의 자식, 조카들은 잘 자라주었다. 아들은 특전사 하사관으로 근무하며 그에게 가끔 용돈도 쥐어주고 있고, 딸은 간호학과에 재학하며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조카들도 꿈을 이루기 위해 착실히 나아갔다.

조카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외삼촌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리라. 그가 조심스럽게 조카에게 이야기 한다. “야야.....세상에 꽁짜가 없는 뵙이여.....니가 누군지도 모르는 디 그렇게 쉽게 200만 원씩이나 주겄냐.....너도 아다시피.....이 삼촌도 한 달에 200만 원씩 빚 갚을라고 얼마나 고생혔나.....잉.....8년이여....8년. 버스비가 아까워서 걸어다니며 죽을똥 살똥 일해서 모아야 간당히 200만 원 모을 수 있었잖여.....알것냐.....다시는 꽁짜바라지 말어라.....잉.”

그리고 “변호사님.....야가.....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엉뚱한 일을 벌였구만요.....깊이 반성하는 모양인게.....잘 좀 살펴주이소.....잉. 야가 간호조문산가 먼가 혀서 지 애미 보살필 수 있게꼬롬 잘 좀 부탁혀요.....그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구만요.....”

다시 조카의 손목을 잡고 나가는 그의 등은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진 듯이 굽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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