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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婦



<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엄윤상>

그녀는 교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도입된 임용고사를 거부하다 1년 늦게 교사가 되었다. 그녀가 그를 만난 것은 중학교에 발령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그는 대학을 간신히 졸업하고 노동운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일에 그녀의 대학친구와 그의 노동야학 선배가 그를 소개해주었다. 말하자면 그가 그녀의 생일선물인 셈이다. 그녀의 친구와 그의 선배가 백년가약을 맺는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도 눈빛을 교환했었다. 

당시 백수였던, 그리고 결혼하고서도 한동안 백수였던 그는 과감하게 그녀에게 고백했다. 가난했던 그는 어느 담벼락을 넘어 핀 장미꽃 한 송이를 꺾어서 그녀에게 건네며 청혼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청혼을 수락했다.

결혼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녀의 부모를 비롯한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친척들, 친구들까지 나서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우선 그가 직업이 없고 앞으로의 전도도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애지중지 키운 딸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들을 설득했고, 그녀의 결정을 언제나 믿어주던 아버지의 결단으로 그녀와 그는 혼인할 수 있었다.

결혼은 현실이다. 그녀가 결혼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백수인 관계로 그녀가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임신한 채로 1시간이 더 걸리는 출근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했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기 위해 가파른 언덕을 걸어서 올라야 했다. 그와 그녀의 보금자리가 가파른 언덕 정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부모가 한 칸짜리 그들의 보금자리에 와서 하루도 머물지 못하고 당일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눈물을 머금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우는 아들을 달래며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응원을 보내는 일은 열심히 하였다. 그가 좌절하고 있을 때 누구보다 힘들었을 그녀는 오히려 그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녀와 그의 운명의 날이 밝았다. 그 즈음 그녀는 전교조에서 탈퇴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교장에게 구박을 받으며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취업을 위한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는 더 이상 시험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과 함께 그녀가 마련해준 어느 온천이 있는 펜션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합격자를 발표할 시간이 넘었는데도 연락이 없어서 그는 이번에도 낙방했다고 생각하고 체념한 상태였다. 그 순간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우느라고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았다. 그녀가 우니 그도 울고 아들도 무슨 일인지 몰라서 울고. 한참 동안 눈물을 쏟은 후, 그녀가 말한다. “고마워요.”

그렇게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7년이 넘어서 정상적인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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