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진리’라는 말은 헬라어 ‘알레데이아(ajlhvqeia)’를 번역한 말이다. 히브리어로는 ‘에메트(tma)’다. ‘에메트’는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에메트’는 ‘올바르고 정확하며 참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늘 주위에서는 눈에 띄거나 마주보는 사람보다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사람을 더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핍박받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다. 이처럼, 흔히 사람들은 가까운 곳보다 먼 곳을 동경한다.
바울의 ‘진리’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엡 4:21)는 사도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실현된 것을 전제한 것이다,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뜻보다는 복음을 가리킨다(갈 2:5, 14; 골 1:5)
진리는 성실과 신실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종교적, 도덕적 삶의 전 분야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지를 결정할 때, 우리는 누구나 제주도에 가자고 하는 것이 훨씬 더 가슴을 부풀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진리를 먼 곳에서 찾으려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여행을 하다보면 먼 산이나 들판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그러나 자신이 타고 있는 자가용이나 자동차, 기차나 버스에서 내려 그 아름다워 보이는 곳을 찾아가 앉아보려 한다면 손수건이나 다른 깔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그대로 앉을 수 없다.
이것은 대체로 사람이나 환경이나 멀리 보이는 것이 아름답다거나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그곳의 현실은 생각이나 느낌과는 다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부사람들이 과소비풍조에 말려들고 외국산을 선호하는 문제도 바로 이런 심리적 요인에도 기인한다.
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보다는, 자기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보다는 다른 곳의 학교나 선생님을 더 좋게, 훌륭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런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1:5)
진리, 그 진리는 반드시 멀리 있지 않다. 그, 진리는 바로 우리의 주위에 있다. 바로, 여러분을 가르치시고 키워주는 이 학교, 하나님과 동행하는 바로 이 학교와 여러분이 아끼고 존경해야할 진리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