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걸어가자.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의 태양이 아직은 눈부시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침과 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지고 자신을 돌아다보기 좋은 시간들이다.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우리네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할 시간들이다.
봄이 지나가면 여름이 온다.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이 오고, 곧바로 겨울이 우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사계절 중에 자신을 돌아다볼 가장 좋은 시기가 가을의 초립이 아닐까 한다. 내가 즐겨 흥얼대는 가수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 가사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날 저물도록 몰랐네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
우리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가을 우체국 앞에서 과연 누구를 기다릴 수 있을까? 그러나 그리운 이가 있다면 다행이다. 그립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 하나 없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란 말인가?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유를 알 수 없다. 내 자신 또한 세상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냈으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개념조차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을까? 슬픈 현실이다. ‘노오란 단풍잎’, ‘눈보라’, ‘나무’, ‘꽃’ 등 정말 소중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당신이 손을 내밀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걸어가자. 자신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름답다. 격려해주고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앞만 보고 달려 가다보면 많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얼마나 빨리 우리를 지나가는가? 한 쪽을 챙기다보면 다른 한 부분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완벽하게 삶의 모든 방향을 컨트롤하기는 어렵다.
내가 기다려야 할 그대는 있는지?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이 저무는지 모를 여유는 있는지?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지? 정말, 날이 저물도록 그대가 그리워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랑에 빠져 보자. 그 결과는 아름다울 것이다.
노래 가사처럼‘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를 흥얼거리는 것에서, 우리 모두 함께 저 멀리 동행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진정 우리가 걸어가야 할 진정한 삶의 방향이자 함께해야 할 미래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