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전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한국수의외과학회 회장>
우리는 살면서 많은 ‘연’ 혹은 관계를 맺고 유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때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연을 인연이라고 하지만 동물과의 ‘연’에는 특별한 단어가 없어서 “동연”(동물과의 인연- 사전에는 없는 단어임)이라고 붙여본다.
반려동물 1000만의 시대에 동연(동물과의 인연)을 말하는 사람도 이제 자연스럽게 많아지는 것 같다. 거기에는 대통령의 개로 불리며 청와대에 입성한 풍산개, 마루와 유기견에서 퍼스트 도그가 된 토리 그리고 고양이로선 처음으로 푸른 집에 들어간 퍼스트 캣, 찡찡이도 큰 몫을 한다. 연일 양산되는 수많은 뉴스 속에서도 토리와 찡찡이 소식이 알려지는걸 보면 시대가 변했다는 걸 실감한다. 지난 며칠, 오락가락하며 내리던 비 덕분에 모처럼 맑은 가을하늘을 본다. 하얀 뭉게구름이 뛰는 강아지 모양이더니 이내 배부른 어미개처럼 보이며 몇 년 전 만든 동연이 떠오른다.
오늘처럼 솜털 구름이 새하얀 빨래마냥 널려 있는 오후, 야구모자를 쓰신 선생님 포스의 여자 보호자가 아이들 3명과 급하게 학교 동물병원 문을 들어왔다. 안고 온 배부른 요크셔테리어는 이미 탈진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영양제 주사와 함께 서둘러서 제왕절개 수술을 마치고 눈도 뜨지 못하는 강아지 두 마리를 수술 방 너머로 보여주었다. 안도하는 아이들과 보호자를 그때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왼팔과 다리, 오른쪽 얼굴이 심하게 뒤틀려 보이는 두 아이와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어눌한 말씨와 행동을 하는 한 아이에게 ‘요키(어미개)도, 새끼도 둘 다 건강하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으로 내어준 쵸코파이를 먹는다.
이렇게 ‘요키’와 어린이 재활원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과의 인연과 동연이 동시에 생겼다. 그 뒤 정신과 지체가 자유스럽지 못한 아이들에게 강아지는 매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평소 생각을 함께 오신 선생님께 상의 드렸다. 다행히 몇 번의 의견교환과 회의 끝에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억지로 재활 운동하는 대신 즐겁게 강아지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하는 운동량을 체크했고 강아지 친구와 함께 하면서 얻게 되는 정신적, 심리적 안정감을 살펴보았다.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결과는 우리를 놀라게 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강아지들과 뛰어 노는걸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인연’이 된 선생님은 ‘자기만 알고, 도움과 보살핌만 받던 아이들이 자기가 돌봐야 할 대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교육성과’ 라고 하시며, ‘어린이 재활원의 아이들이 나누어준 빵을 다 먹지 않고 강아지 몫으로 남겨가고, 스스로 분변을 치우고, 오줌을 닦아내는 걸 보는 순간 그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라고 말씀 하셨다.
처음 ”요키“ 와 맺어진 ’동연‘으로 한 달에 두 번, 강아지들이 아이들과 잘 놀고 있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는지, 살펴보러 갔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인연과 동연은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서 조현병 환자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고 거의 3년 동안 한 번도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았던 환자가 우리가 데려간 강아지를 보려고 자신의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원장님이 흘리셨던 감격의 눈물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반려동물은 이제 우리의 단순한 친구를 넘어 우리 곁을 지키며 힘을 주는 커다란 조력자이다.
제법 가을바람을 느끼며 듣는 오늘 아침의 라디오 방송은 편안해서 좋았다. 학교에 도착할 무렵, 흘러나오는 음악이 “가을이 오면” 이더니 연이어 ‘가을 편지’라는 곡이 나온다. 잠시 노래가 끝날 때까지 차에 앉아 흥얼거리다 내렸다. 그렇게 맹렬하게 뿜어대던 열기도 여름과 함께 멀어지면서 가을은 또 이렇게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다. 가을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고 혼자 간직할 멋진 추억을 만들거나 떠올리기에 적절한 계절이다. 이 가을 ‘동연’ 하나 만들어 보시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