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식 <고창소방서장>
1995년 서울의 한 백화점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백화점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던 점원 김모씨는 결혼을 앞 둔 예비신부 민주, 그리고 동료와 함께 흙더미 속에 깔려 서로를 위로하며 구조를 기다리지만 끝내 홀로 살아남는다.
10년이 지나 취직을 위해 높은 빌딩안의 면접장에 들어선 김모씨는 앞 사람들이 들어간 후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자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곤란 증상이 와서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10년이 지난 붕괴사고의 후유증과 지하에 장시간 갇혀 있던 경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 소방공무원은 어린이들에게는 영웅, 나아가 국민들에게는 슈퍼맨이라 불린다. 1426년(세종8년) 금화도감을 시작으로 화재를 담당하였으며, 1982년 응급환자 이송업무 시작, 1988년 인명구조 활동 시작, 2005년 생활안전대 운영, 그리고 올해 소방청이 새로이 개청하며 어느 덧 현재는 모든 국민들의 슈퍼맨으로 거듭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소방관의 순직, 자살 등 소방관들의 희생이 수 없이 있었고, 소방관들에게도 역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들이었다고 여겨진다.
소방공무원들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추가적인 위험이 있는 사고현장에 들어가 구조활동에 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참혹한 현장을 여과 없이 보게 된 대원들은 외상 후유증이 남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 것을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한다. 이 증상을 겪는 환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에는 PTSD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외상 후 다양한 신체, 정서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응이 ‘남자답지 못해서’ 또는 ‘심약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다수의 소방공무원들은 업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 내실 있는 건강검진과 더불어 소방활동과 관련된 각종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소방서마다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두고 있어 처참한 현장에 다녀온 소방관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도 사망사고를 목격한 소방관은 3일 이내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피닉스 소방서의 경우 의료진 21명이 소방관 건강ㆍ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보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는 ‘2012년 소방공무원보건안전 및 복지기본법’이 제정되었으며, 전라북도의 경우 소방공무원 2,075명을 대상으로 PTSD에 관한 검사가 매년 이뤄지고 있고, 치료 필요군과 우울증치료 필요군으로 구분하여 사후관리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올해 7월 초 고창소방서장을 부임한 필자는 화재진압 및 구조·구급 등 가장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119안전센터의 업무축소와 정신건강 및 심리적 안정을 위한 교육을 더욱 확대하여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소방공무원이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줘야 함을 실감하고 있다.
또한 소방서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직원들의 안전 무사고를 기원하고 있다. 안전사고에는 출동한 현장에서의 무사고가 우선이며, 외적인 부분을 넘어 심리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선진 소방으로 한 걸음 도약해 나가야 할 때이다. 이처럼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장애는 본인은 물론 방치하게 될 경우 가족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입사해서 10년 이상 혹은 수십 년씩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소방공무원의 수면의 질 지수를 측정하는 PSQI(Pittsburgh Sleep Quality Index) 검사를 통해서 수면장애 관리도 꼭 필요하다. 건강한 정신에서 오는 안정된 마음과 사랑을 담은 따뜻한 손길이야말로 진정한 구조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119소방대원은 온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전령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