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깊어가는 가을밤이다. 낯선 타향이 고향이 된지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태어나고 청소년기를 지낸 고향이 그리운 밤이다. 귀뚜라미 소리에 시인이 되고, 차가운 밤공기에 밀려오던 성장통은 잊을 수가 없다.
스마트폰에서 ‘띵, 띵, 띵’ 알림 음이 요란하다. 깊어가는 가을밤, 누군가의 소식이 도착했음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열어보길 거부했다. 요즘 극성을 부리는 외국인 여성의 19금 친구 요청에 머리끝까지 짜증이 나 있던 차다. 그녀들 때문에 페이스북 탈퇴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 중·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절친’을 만났다. 비록 사이버상의 대화였지만, 어쩌면 얼굴을 맞댄 것처럼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이름은 ‘박원용’, ‘WON PARK'이다. 결혼식을 다녀오다 친구의 사무실에서 남긴 사진 한 장이다.
어린 시절 흥얼거리던 동요가 있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 긴 시간 얼마나 외롭고, 고향을, 친구들을, 가족들을 그리워했었을 내 친구 ‘박원용’과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싶다. 어디 그런 친구가 ‘박원용’ 뿐이겠는가?
깊어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그리워라 나 살던 곳 사랑하는 부모형제
꿈길에도 방황하는 내 정든 옛 고향 <동요 「여수」>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예전 같지 않은 현실이다. 언제나 달려가도 늘 활짝 웃으시며 반겨주시던 ‘부모님’이 계신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깊어가는 가을 밤, 내 친구 ‘박원용’이 있어 행복하다. 자주 페북으로 밴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보니 그리움이 커져만 간다. 비록 고향을 떠나 타향을 고향삼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가족 같다. 이 짧은 동요, 몇 마디가 우리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힘이 있다. 향수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더 많은 친구들, 가족들, 선후배들, 지인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렇지만, 조금의 ‘아쉬움’이 ‘큰 기쁨’이 되도록 외롭지만 참고 이겨내야 한다. 주어진 미래에는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다가올지 그 누구도 알 없다. 사랑하며, 기쁨으로, 꿈길에서 고향의 정다운 길을 걸어보도록 노력하자.
깊어가는 가을밤이다. 희망을 보자. 진실은 통하게 되어 있다. ‘내’가 그들이 그리우면, 친구도, 가족도, 지인도 그리운 이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얼굴을 볼 수 있는 그날, 우리 모두 서로 두 손 맞잡고 하늘을 향해 힘껏 뛰어보면 어떨까?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다.
그리움도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