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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분량은 행복의 시작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세상살이에서 늘 웃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네 하루의 치열한 삶 중에서 웃음이 차지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정답에 가까운 것은 ‘적은 분량’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웃으려 노력한다. 좋지 않은 결과에도 ‘웃음의 미학’으로 ‘긍정적 마인드’와 함께 하려 최선을 다한다.





모처럼 우리들에게 다가온 긴 휴식이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를 희망해본다. 취업준비에 바쁜 ‘취준생’이나, 어쩔 수없이 가게를 열고 손님을 기다려야 하는 자영업 사장님들, 우리들이 쉴 때 일터를 지켜야하는 많은 분들에게도 ‘웃음’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소박한(?) 행복이다.





고향을 찾아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운 친척들과 친구들을 만나는 ‘웃음’의 마당인 ‘한가위’가 마무리 되었다. 요즘은 고향을 찾기 보다는 부모님이나 일가친척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고향을 방문한 지도 참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설령, 고향을 방문한다 해도 아버지 산소를 찾아뵙고 돌아오곤 한다. 고향도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친구들도 산천도 예전의 것이 아니다. 정다운 친구와 차 한 잔을 기울일 수 없는 현실이다. 그만큼 나이가 쌓여간다는 슬픔도 한 몫 한다. 서글프다.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안음에 더욱 서글프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형님들, 누님들, 조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많지 않았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먹먹했다. 그래도 가끔 웃어주시는 편안한 어머니의 얼굴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정답은 어머니의 편안한 얼굴에 있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으신 편안한 어머님의 얼굴이 바로 ‘웃음’의 등불이었다.





긴 휴식을 마치고 직장으로, 학교로, 가게로, 학원으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 기다린다. 휴식에 지친 피로가 힘들게 하겠지만, 서로서로 웃어가며 서로를 반겨줄 것이라 믿는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정하게 웃어 주고, 인사 나누며, 웃음의 분량을 늘려 주는 것이다.





웃음의 분량은 행복의 분량이다. 내가 웃어야 다른 사람도 웃을 수 있다. 지금까지 웃었던 분량보다 더 많이 웃어 보자. 내 자신이 웃음으로 인해 얼마나 더 행복해지는 질 수 있는 걸음을 내딛어 보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웃을 수 있다는 큰 선물을 냉큼 받아들여, 큰 소리로 웃어보자.





‘웃음=행복’이 풍성한 결실의 계절, ‘사랑’도 넘쳐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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