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작가 / 예원예술대 객원교수>
영국이나 일본은 유난히 전통을 강조하며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대륙에 비해 전통이 짧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5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짐작하는 그대로이다.
우리의 우수한 전통 문화유산의 하나인 한지문화의 경우를 보면 그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 이유로 첫째 수시로 바뀌고 일관성이 없이 일회성에 그치는 문화육성 정책을 들 수 있다. 일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여 전통산업 육성 정책을 세웠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정책이 바뀌고 갑자기 예산이 끊기는 등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둘째 실생활에 한지가 쓰이는 곳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사용자들이 일반목재 펄프로 만든 값싼 중국산 한지만 찾는 것에 있다. 따라서 전주의 전통산업인 한지산업이 침체될 수밖에 없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보자면 한국전통문화전당내 전주한지 지원센터에서 ‘새로운 모색’이란 주제로 열리는 예원한지조형회의 11번째 기획전시회가 주목할 만하다.
예원한지조형회 'PAPER WORKS'는 예원예술대 문화예술대학원의 한지예술전공 동문들이 참여하고 있는 동아리로서, 한지예술에 대한 열정을 담아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각자 완성한 작품을 소개하고 창조적인 비평을 통해 발전시키고자 해마다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한지의 전통적 감성으로부터 나오는 오래된 미래’라는 주제로 여러 작가의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회화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 한지 공예작품들도 같이 출품되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신경자 작가의 닥죽으로 만든 지호공예 항아리는 실생활에도 쓰이며, 송미령교수의 전지공예품인 조명등은 조각칼로 일일이 무늬를 새겨 넣어 오래된 전통과 한지의 포근함이 현대적 기술인 전구 불빛과 어우러져 은은한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함을 준다.
김미진 작가 전지공예 기법으로 예단함을 작품화했다. 예단함은 결혼식 약 한 달 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함으로 사주, 비단, 패물, 신발 등을 녹황색 보자기와 한지로 곱게 싸서 넣어 보냈다.
유시라 작가는 '잔상의 정원'이란 주제로 젊은 작가답게 한지를 직접 만들어 작가만의 정원을 캔버스에 표현해 냈는데 현대적이면서도 진경산수화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유안순 작가는 민화에 천착하는 작가인데, 이번엔 보통 한지가 아닌 색 한지를 겹겹이 물로 겹쳐 줌치 한지를 만들어 바탕지로 사용한 점이 특색 있으며 자칫 평이해 보일 수 있는 민화에 색한지로 인해 좀 더 깊은 색감을 더했다.
필자는 '들숨과 날숨'이란 주제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맹목인 질주로 이어지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바쁜 생활에 매물 되어 있는 현대인의 내면을 관조하게 하는 작품을 전시하였다. 작품에서 포근한 재료인 한지뿐만 아니라 차갑고 부식되어가는 금속재료를 함께 사용하여 자아와 현실의 대립을 표현하였으며, 들숨과 날숨을 실체화하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자 하는 현대인의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처럼 한지조명기구, 예술작품, 공예품 등등 더욱 다양한 영역의 실용적인 창작활동이 이어져야 하며, 수년 지나지 않아 변색되고 있는 보통 종이와 달리 천년을 살아 숨 쉬는 한지문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1377년 인쇄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은 바로 우리의 전통 한지에 인쇄된 작품이다. 2016년 로마에서 한지작품이 선보여 최고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우리의 전통한지가 없었다면 자랑스러운 문화는 오래전에 삭아 없어졌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한지제조기법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며, 우리만의 전통문화를 세계 속에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통한지제조법을 발굴, 육성하고 더 많은 창작활동과 전시회 등으로 일반대중에게 소개하여 생활 속 문화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