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주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태실장>
바쁘게 벼를 수확하던 들녘은 다시 조용하다. 이제 사료로 이용될 볏짚 곤포들만이 논두렁을 지키고 서있을 뿐이다. 금년에는 아직까지 소위 ‘풍년의 역설’은 피해가고 있지만 쌀 남아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농지면적도 그에 비례하여 줄여야한다는 단편적 시각도 존재한다.
한번 무너진 농지의 원형은 좀처럼 복구하기가 힘든 일이기에 농지의 가치를 어떻게 인식시키느냐는 농업과 관련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로서는 소위 쌀소득보전고정직불제, 친환경농업직불제 등 다양한 직불제제도와 타 작물 재배를 유도하는 쌀생산조정제 정책 등을 통해 현재의 농지는 그대로 보전하면서 농업인도 보호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관련 농업인이 아니면 별 관심이 없는듯하다. 특히 농지는 시장가격으로만 가치가 평가되기 일쑤여서 경제적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무분별한 농지전용으로 인해 면적이 급격히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농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작물의 총액은 2015년 기준 8조8천억 정도의 규모이다. 그러나 농지가 단순히 쌀, 보리, 콩 등 단순히 우리가 먹는 식량 및 가공품의 원자재를 공급하는데 그치는 공간이 아니라 홍수조절기능, 수자원함양, 이산화탄소 흡수 및 산소방출을 통한 대기정화기능, 여름철 기후순화, 수질정화 그리고 토양유실저감 같은 환경적 공익기능을 수행한다. 농촌진흥청은 이들의 경제적가치가 2006년 기준 약 67조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이는 전국 쌀 생산액의 8배를 넘는 가치이다.
최근에는 농지의 기능을 작물생산과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공급기능, 기후조절, 수질정화, 온실가스를 고정 하는 조절기능, 생태관광, 여가, 휴양 등의 문화기능, 생물서식지 제공, 유전적 다양성 유지 등의 지지기능으로 세분하여 이로부터 인간이 얻는 혜택을 생태계서비스(Ecosystem Services)개념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자연정책 패러다임이 자연자원의 보전에서 지속가능한 이용으로 국민인식 변화함에 따라 생태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대되고 있고 국내외적으로 생태계서비스를 화폐가치로 정량화하여 정책에 활용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유엔환경계획(UNEP),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등에서 전 지구 및 지역단위 생태계서비스 평가실시 및 평가 추진을 독려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습지, 산림 등 일부지역에 대한 생태계 가치평가를 추진하여 경관보전직불제(농축산식품부), 생태보전협력금(환경부)등의 형태로 정책에 반영 한 것 등이 그 예이다. 충남발전연구원은 충남 논습지의 생태계서비스 가치평가연구를 통해 경제적 가치가 약 32조원에 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농지가 농업행위의 근간이고 농업 그자체가 공익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농촌이라는 물리적 공간 또한 단순히 거주지가 아니라 자연경관 및 문화적 전통의 유지기능, 지역사회유지와 국토균형발전기능, 귀농·귀촌을 통한 공동체유지 등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공공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국민들은 이런 농업·농촌의 가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2016년 전북연구원은 농업·농촌과 다원적 기능에 대한 도민의식조사를 실시했다.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는 다소 낮았지만(29.1%) 그 가치는 높게 인정하고 있고(52.3%) 앞으로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대답하였다(71.4%). 다원적 기능에 대한 공익기금 납부의향도 73%정도로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반면, 다른 직업이나 산업과 비교하여 농업·농촌에 대한 도민의 사회적 인식은 긍정적 인식보다 부정적 인식이 높았다. 결국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도 증진을 위해서는 다원적 가치와 함께 새로운 시각의 가치 창출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으로 읽혀진다.
가치는 항상 타인의 시선과 공감으로부터 나온다. 도시근로자의 64%에 불과한 가구당 소득 차이 극복, 고령화와 공동화현상이 심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수단의 강구, 의료, 복지 등 생활환경의 개선 없이는 농업이 매력 있는 산업이라는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업계 내부에서 부터 경영능력, 마케팅, 연구개발(R&D), 산학관연의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한 역량의 강화가 선행되어져야한다. 그러나 농업계내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정부의 지속적인 보호정책이 뒷받침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대부분 농업을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헌법 개정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번기회에 시대적 상황 변화를 반영한 농업·농촌의 다양한 역할과 공익적 기능, 이를 유지하고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을 헌법에 담아야한다는 분위기가 농업계 내부에서 일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이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농업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적 생태환경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매우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제안이다.
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농촌을 지키고 있는 농업인을 위로하고 농업·농촌의 존재가치를 되새기는 날이다. 뜻깊은 날에 농업·농촌의 다원적가치가 사회적 공감대 아래 헌법에도 명문화됨으로서 농업·농촌의 존재이유를 명확히 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지금까지의 농업·농촌의 역할로도 충분히 주장할만한 자격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