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수 <시민감사옴부즈만, 공학박사>
TV나 영화에서 죽은 사람의 영이 현세를 돌아다니거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영의 세계를 잘 모르거나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계(靈界)는 아무나 들락 달락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상이 제삿날이면 집을 찾아온다고 해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집안의 빨랫줄을 걷던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면 제삿날에 참석하는 귀신이 빨랫줄에 넘어질 정도로 형편없는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고, 일 년 내내 굶다가 그날만 식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을 터인데 제사에 온갖 정성을 쏟던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조상 섬기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봄가을로 조상 묘를 돌보는 일이 대소사의 가장 중요한 일로써 이를 소홀히 하면 화를 당한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조상 모시는 일을 소홀히 했다고 해서 후손들에게 화를 끼치는 속 좁은 조상은 없을 터이지만 오랫동안 우리네 관습은 장자가 제사를 모시지 않으면 차자가 제사를 모실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살아가기가 바쁘다는 핑계로 살아있는 부모도 모시지 않기에 자손들이 제사를 모시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필자의 친구가 장손인데 제사를 모시지 않겠다고 하니 그 동생이 자기가 모시겠다고 하자 제수씨가 이를 몹시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집안 식구 모두가 제삿날만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친구 동생의 논리에 따르면 조상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면 집에서 차린 음식만 먹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삿날만 되면 신위 패를 싸들고 가족들과 함께 뷔페에 가서 신위 패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조상님! 맛있게 골라 드십시오.” 라고 했더니 식구 모두가 제삿날만 기다렸다는 것이다.
조상이 귀신이 되었다고 한다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맞는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조상은 신이 될 수가 없다. 조상이 신이 된다면 각 집안의 고조부의 고조부까지 모두 신이 되어 버리기에 영계가 몹시 복잡해진다. 그러므로 결코 사람은 죽어서 신이 되지 않는다. 윤회하지도 않는다. 윤회한다고 하면 지구의 인구가 계속 증가되었기에 이론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또한, 짐승이 억겁의 공을 쌓아 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면 상당히 헷갈리게 된다.
짐승은 짐승으로 태어나서 죽고,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는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유교사상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은 조상을 섬기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언제 돌아가셨는지를 기리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가 있고,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공동체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입신양명은 출세주의로 변질되어 죽은 이의 위패까지 학생부군(學生府君) 대신 관직명을 붙이게 되는 웃지못할 일도 생기게 되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매개체이다. 옛 것을 다 취할 수도 다 버릴 수도 없다. 미래는 우리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달라지지만 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승되어야 한다. 조상 묘를 돌아보고 선조들의 뜻을 새기는 일은 영원히 계승되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