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화 <전주기전대학 겸임교수·홍정화규방아트 대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보부아르(1908~1986 프랑스 소설가, 혁명가)는 얘기했다. 오늘 필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하이힐 역시 여성의 전유물 이라기보다는 여성으로 만들어 주는 하나의 장치였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하이힐은 오늘날 뒷 굽이 높은 여성 구두의 대명사가 되었으나, 원래는 남성들도 구두를 신었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고대의 그리스 테베 고분의 벽화에서 남성들이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하이힐의 효시이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도시가 밀집되고 위생시설이 좋지 않아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이 거리에 널려 있다 보니 자연적으로 신발의 바닥이 두껍고 뒷 굽이 있는 부츠가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고 이는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인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남성들이 승마할 때 하이힐의 힐을 등지에 단단히 걸 수 있었기 때문에 하이힐을 즐겨 신었다고 한다. 이것은 하이힐의 편리함이 처음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루이 14세는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으로 키를 커 보이게 하려고 뒷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 이를 본 궁중의 남녀 귀족들은 이를 따라 높은 구두를 주문해 신기 시작했고 이것은 곧 유행이 되었다. 유행이 주춤할 즈음 남자들은 본래의 키로 돌아 왔으나, 궁정의 여성들은 여전히 높은 힐의 구두를 신었다. 결국 이전까지는 높은 구두 굽을 남녀가 함께 신었지만 이 때부터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구두 뒷 굽의 불균형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남성은 여성보다는 낮은 굽을 신게 되었고 여성의 굽은 높은 굽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여성이 높은 굽을 신으면 허리가 바로 서게 되고 힙에 힘이 들어가며 가슴을 더욱 높아보이게 한다. 또한 힐을 신고 걸을 때는 엉덩이의 근육을 발달하게 하여 남성의 관능을 충동하기에 여성들은 높은 굽의 힐을 신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버선도 하이힐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틀버선이라 하여 여자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 발보다 작은 틀버선을 신겨 발의 성장을 억제하였다. 틀버선을 신기 시작하면 반년은 울어야 하고 1년은 비틀거리며 걸어야 한다고 했다. 이 역시 여성의 특수부위를 자극하여 남성의 관능을 충족하게 하는 데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발을 항상 아프게 하고 작게 하는 뜻은 모권시대에서 쿠데타를 한 부권시대의 남성들이 모권의 반혁명을 막기 위해 활동성을 마비시키고자 발에다 가한 고문이라는 학자도 있다. 과거 중국에서는 전족(纏足)이 수세기 동안 관습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여성의 작은 발이 아름다움의 가장 중요한 표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영구적인 불구가 되어 있었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육체적인 활동에도 제약이 따랐다. 결국 중국의 전족 역시 그 숨은 의미는 우리나라의 틀버선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20세기 섹시아이콘 마를린 먼로(1926~1962 미국 배우)는 “하이힐은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지만 모든 여자들은 그에게 감사해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여성 패션의 완성이 하이힐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듯 현대가 되면서 ‘하이힐’은 높은 뒷 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 매혹적인 여성의 패션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는데 하이힐은 여성들의 뇌수에 자극을 주며, 임신율에 까지 영향을 끼치는 등 수많은 부정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형틀로 아름다움을 미끼로 하여 여성들에게 수난을 주고 있다.
프로이트(1856~1939 오스트리아 정신분석창시자)가 여성 신발을 생식기에 대한 상징으로 보았는데 다시 말해 하이힐이 여성의 관능미를 표현하는 간접적 도구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넘어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하이힐의 단점을 잘 알고 있는 한 여성이 그들의 여성성을 담보로 언제까지 이 위험한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