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교사의 진정한 행복은 아이들과의 소통일 것이다. 얼굴 가득 웃음 만땅, ‘사랑해요, 민초 쌤’, 칠판 가득 담긴 아이들의 소통 메시지, 그 메시지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국어 수업으로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이, 이름이, 익숙해지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어 난 행복하다. 일방적인 나의 마음은 벌써 초롱초롱한 국어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어버렸다.
입학을 하고 교정 곳곳에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네던 귀염둥이들, 그 녀석들이 3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 세월 참 빠르다. 녀석들의 1학년 시절, 수업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3월 첫 수업을 마치고는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아이들과의 친숙함은 마치 준비된 만남처럼 다가왔다. 1주, 2주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정이 새록새록 싹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좋지만, 웃으며 차근차근 모르는 것을 도와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 말하기, 듣기, 쓰기의 기본적인 베이스를 채워가는 수업, 서로 공감하는 수업을 만들어보기 위해 녀석들과 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여러분, 詩 좋아해요. 요즘 친구들은 詩를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詩를 단지 시험을 위한 배움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시험을 위한 기술이 아닌 진정 가슴으로 맞이하는 詩 수업이었으면 해요.”
그렇게 수업이 되었다. 먼저 詩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운율에 대해 설명하고, 시를 낭독하였다. 아이들에게는 두 눈을 감고 화자가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느껴보았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엄마 걱정
기형도(1960∼1989)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인 기형도는 주로 유년시절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독창적이면서도 개성이 강한 詩들을 썼다. 저서로는 유고 시집 '잎 속의 검은 잎',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전집' 등이 있다.
수업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했다. 배고픔에 점심을 굶고, 하루 종일 들과 산을 친구삼아 노닐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텅 비어 있던 시골 초가집 이야기며, 어린 시절 엄마가 열무를 팔러 10리(약 4Km)가 넘는 5일장에 나가시던 날, 가슴 아팠던 외로움과 서글픔, 그리움 등이 복합적으로 다가와 아이들에게 감성적으로 지난 추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설명을 듣던 남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울컥, 그 자체이다.
“쌤, 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를 바라보니 정말 슬픈 시이군요. 마음에 와 닿네요. 무언가가 울컥하는디요. 아, 어쩌죠. 울 세대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인지 아이들이 메마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좋은 시를 많이 읽어 봐야겠어요.”
“그래, 00 학생도 엄마에 대한 아련한 추억 속에서 그리움, 슬픈 순간들이 막 밀려오나 보구나. 그러면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 걸.”
“그래요, 오늘 이 시를 배우고 나면 집에 가서 엄마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꼭 안아 드리고 싶어요. 마음이 아프네요.”
그렇게 아이들의 가슴에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란 시가 아로새겨졌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시에 대한 온갖 미사어구도, 시인에 대한 장황한 소개도 필요치 않았었다. 아이들은 이미 눈으로 머리로 가슴으로 시를 받아들이고 있음에 나와 아이들은 행복했었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도 넘쳐나는 지식이나 시청각 자료도 아이들이 공감하지 않는 수업은 무의미하다. 나는 짧은 수업시간 아이들과 가능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 때론 수업에 방해되는 질문도 수업과 연결시켜 아이들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그렇다. 수업은 소통이다.
녀석들과의 3년 수업은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그래도, 녀석들과의 행복한 시 수업은 아마도 오랜 기간 나의 추억을 행복으로 물들일 것이다. 물론, 녀석들은 이미 다 잊어버린 지 오래겠지만 말이다. 커진 덩치만큼이나 생각도, 배려도, 행복도, 사랑도 풍성해져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길 희망한다. 녀석들에게 펼쳐질 무궁무진한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