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영 <임기영성형외과 원장>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길거리에서든 또는 영화나 TV에서 보던 간에 미인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시대에 따라 미인이 달라지는 현상은 한국인의 그동안 없었던 얼굴이 새로 생긴다는 뜻이 아니다. 코가 높고 눈에 쌍꺼풀이 있고 다리가 긴 여자는 조선시대에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런 형이 미인으로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못생겨보였다. 그러다 현대에는 그런 형이 오히려 세련된 미인형으로 보이는 것이다. 현대에도 달덩이 같은 얼굴이 있지만 조선시대에 이러한 납작하고 둥근 얼굴형을 좋게 보았던 것이다.
1950년대 영화의 여주인공은 코가 상당히 높았다. 꽤 높은 코가 드문데도 불구하고 요즘의 기준으로도 드물게 코가 아주 높은 얼굴형의 배우가 이름을 날렸다. 그 전 시대에 비교하여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미모에 비해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해방이후 서구 문화의 유입과 그에 대한 선망 때문일 것이다.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시킨 미군과 국내의 물밀듯이 들어온 미국문화가 미국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이것이 가치관에 작용하여 미국인을 닮은 한국인 얼굴에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 것이다. 50년대 들어서 미인관의 서구화 경향은 한국전쟁을 통하여 더욱 강화된 것 같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 주한미군의 한국 내 주둔 확대로 유입된 미국 문화가 가져다준 변화를 가장 크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부터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이목구비가 크고 활달한 인상의 여인, 눈이 크고 콧대가 높은 얼굴인 현대미인이 등장한다.
한편 1960년대는 고즈넉하고 소극적이며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수긍하는 현실감내형의 여인을 원하는 시대였다. 60년대의 한국의 사회상은 군사정권의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특히 남성 개개인의 능력이 억제되고 권위주의에 순응하는 처세가 확산되는 시기였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눅이 들어있는 남성들로서는 이목구비가 크고 활동적이며 강한 인상의 여자보다는 남성적 우월감을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소극적인 여성 앞에서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이런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미인관은 70년대 들어서 조금 더 강화되어 앳되고 귀여운 인상의 배우가 인기를 끌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절대미관의 분개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고도의 경제성장의 여파로 물질적 풍요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 각 계층의 사회적 자신감이 증대되고 각종 엔터테이먼트 행사가 잇달아 열려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분위기였다. 미인도 여러 형태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이에 따라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말도 사용되었으며, 미인형이란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90년대에는 영화 '서편제'의 여주인공처럼 쌍꺼풀이 없지만 재능이 뛰어난 한국형 얼굴이 인기를 차지하기도 했다. 군부독재의 종식이후 문민정부가 출현하고 정치경제의 안정과 더불어 88서울올림픽 개최 등에 따른 민족적 자긍심과 자아의식이 고양되어 미인관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넘쳐나는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상업광고, 만화, 뮤직비디오 등의 미인의 얼굴이 넘쳐나고 성형수술의 대중화, 해외브랜드 명품 구입 열풍까지 가세하여 미모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증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