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준 <전주시의회 부의장>
얼마 전 젊은 부부와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돌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의 육아로 힘든 가운데에도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퍽 예뻐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보였던 것은, 아이의 돌잔치를 치르는 대신 첫돌을 기념해 쌀을 기부할 계획이라는 말이었다. 20kg 짜리로 40포 정도를 기부하게 될 것 같다는 덤덤한 그네들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최근 결혼식에서 축의금이나 화환 대신 쌀을 받아 기부한다는 기사를 보기는 했으나 실제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젊은 부부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나누는데 있어 ‘차고 넘쳐서’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거꾸로 말하자면, 부족함 속에서도 그 부족함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이 곧 진정한 나눔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북하면 선조들은 그 나눔을 일러, ‘콩 한 쪽도 반으로 나눈다’고 하였을까.
올해도 연말연시를 맞아 거리에는 구세군의 빨간 종이 울리고 어려운 이웃을 향한 온정의 손길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고사리 손에 쥐여진 천 원짜리 한 장도, 어르신의 넉넉한 인심도 하나하나가 정성이고 사랑이기에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따스해진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최근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기부단체 대한 불신이다. 이를 누군가는 ‘기부 포비아’라고 표현하였는데, 최근 드러난 일명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범죄 및 기부금 유용사건으로 인한 거부감이 퍼진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일탈로 전체를 호도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사회의 불신과 갈등을 증대시킬 뿐이다. 나눔 자체를 외면하기보다 올바른 나눔 문화 정착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성숙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결코 보답받기 위해서는 아니다. 거꾸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갚아야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그 작은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흘러 사회 곳곳을 따뜻하게 밝혀주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작은 수로 하나도 물꼬가 트여야 흐르고, 펌프에서 물을 퍼 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이 필요하다. 우리가 나누는 작은 사랑이 물꼬가 되어 흐르고, 마중물이 되어 몇 배의 희망으로 되돌아올 것을 생각한다면, 보답까지는 아니어도 우리의 마음이 충분히 흐뭇하고 기쁠 것이다.
채근담(菜根譚)에서 말하기를, 아무리 큰돈이라도 사람에게 일시의 기쁨조차 주지 못할 때가 있고, 단 한공기의 식사이지만 사람에게 일생의 은혜로 감동시킬 때도 있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고 은혜가 되는 따뜻한 세상을 위해서, 작은 것이라도 나눔의 용기를 내어보는 것을 어떨까. 천사의 도시 전주에 더 많은 천사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