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아이들과의 만남, 그 만남은 16년이라는 세월을 쌓아올렸다. 일반적으로 교직생활 10년이 넘으면, 전문성으로 무장한 교사가 되어 후배 교사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 나아가 선배 교사들의 장점을 배워가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교직 생활의 이러한 어정쩡한 중간 위치에서 가장 고민은 아이들의 생활지도도, 행정업무 처리도, 선생님들과의 관계형성도 아니다. 항상 머리를 무겁게 하는 ‘고민 아닌 고민’은 바로 “수업”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만족하고 행복하며, 다음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수업에 대한 이런 고민을 실천에 옮겨 진행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국어 수업 그 중에서도 아이들은 ‘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많이 느껴 왔다. 이에 수업의 출발점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시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됐다.
수업은 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시의 종류와 운율, 함축적인 시어 등을 판서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자 곳곳에서 필기를 하며, 하품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교과서의 시를 감상하고 본 수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학급 담임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시 한 편, '똥 싸고 왔는디요'를 '활동지'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 읽어 보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똥 싸고 왔는디요
민초 박여범
어딘가 어수선한 교실이다.
청소시간 인디,
두런두런 살펴보니 한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평상시 청소에 열심이던 놈이었는디.
-어디 갔을까?
심술궂게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던져댄다.
-이 놈 어디 간 거야?
종이 울렸다. 종회를 시작하려는디,
글씨, 이놈의 그림자가 보인다.
정신없이 자리에 앉은 그에게서 돌직구가 날아온다.
-똥 싸고 왔는디요.
청소 못해서 죄송합니다요 잉. 똥 싸고 왔당께요.
해 맑게 웃는 그 놈의 얼굴에
화장실 고통이 변기 속으로 내려간다.
-아따 징허네 고 놈.
귀엽고 깜찍한 교실에 똥 냄새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제목이 '똥 싸고 왔는디요'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는 눈치였다. 시 공부는 시험공부를 위한 것이라며, 시쿤둥하던 아이들도 시를 읽으며, 반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말 쌤이 쓰신 시예요?”, “재미 있어요”, “똥은 드러워요”, “오는 점심은 다 먹었네요” 등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이런 아이들의 반응을 나는 은근히 속으로 즐거웠으나, 겉으로는 모르는 척 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큰 기대 없이, 그냥 넋두리처럼 적어 본 것이 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시라는 놈은 어려운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옮기면 시가 될 수 있음에 있는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똥 싸고 왔는디요'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빨리 들려주세요?” 전주에서 유학 온 000 학생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다른 아이들도 궁금한 지 고개를 들고 저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것이다.’라는 깨달음이 저를 잠시 머뭇거리게 했다. 지금껏 시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응을 보여준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정말 놀라운 수업의 변화였다.
“음, 이 시가 나온 쌤의 경험이 궁금하다는 거죠? 그래요, 이 시가 탄생에게 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2013년으로 기억합니다. 새 학기, 교실청소 담당은 무조건 ‘남학생’, ‘남학생’이라고 아이들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실은 꼼꼼한 여학생들이 청소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반대였습니다. 그렇게 만난, 4명의 남학생 친구들. 매일 매일, 정말 깨끗하고 멋진 교실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긴급회의가 있어 부리나케 종례에 들어가니 교실이 엉망이었습니다. 의자는 나뒹굴고, 다른 구역 청소담당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와 있고, 쓰레기통은 가득차고, 유리창 문을 열지 않아, 먼지가 뿌옇게 앞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욱! 젊은 시절의 성깔(?)이 올라오려는 찰라, 한 남학생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친구들아, 얼렁 청소하자. 내가 넘 늦었지? 미안, 나 땜시 너그들이 넘 힘들었지? 미안혀, 근디,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당께. 이해혀라, 너그들이, 알았제.’ 앞뒤 두서없이 할 말을 다 내지른 그 남학생, 그제야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주절이 주절이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넉살도 좋게 말입니다. ‘어메, 쌤도 계셨구먼유, 지가유, 하두 배가 아파서리, 똥 싸다 본께, 청소가 지체되었구먼유, 용서하세유. 쌤, 아잉.’ 남학생이 온갖 귀여운 행동에 선생님도 참다 못해 ‘푸하하~~~~~~’를 길게 길게 공중에 내 던졌습니다. 교실은 그냥 웃음바다가 된 것인지, 청소시간인지, 웃음시간인지 모르게 말이야. 다음날 아침. 교실 게시판에는 시가 한 편 걸렸습니다. 그 시의 제목이 바로 여러분이 방금 읽고 감상한 '똥 싸고 왔는디요'입니다. 여러분도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니, 아, 그 똥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지 않나요? 선생님은 지금도 그 당시의 장면들이 생생하거든요. 똥 냄새 가득했던 그 교실이 그리워진답니다. 대답이 됐나요?”
“아, 선생님, 감동입니다. 저도 학교생활과 관련한 재미있는 추억이 많은데, 시 한 편 써 보고 싶어요. 그동안은 시는 시인들이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자신감이 생기네요. 선생님이 지도해 주신대로 편하게 써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많은 시간, 수업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나의 수업, 특히 시 수업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결론은 아이들에게 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습득과 시 창작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수업은 바로 교사가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충실한 수업도 좋지만, 살아있는 수업을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수업에 참여하고 그 수업에 아이들이 함께하는 수업만이 최선임을 알 수 있는 수업이었다.
늦게 시작한 교직생활, 두 자리의 경력이 나에게 남겨준 수업의 진실은 바로 솔선수범하는 교사가 있어야 아이들도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 수업에 동참한다는 사실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의 수업에 진실성이 부족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부족하지만, 시 수업 살아있는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시인의 작품보다 교사가 직접 시를 작성해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창작 작업을 통해 흥미 유발과 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통해, 교과서 수록 시 작품에 대한 수업을 진행한다면 그 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