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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청소시간이다. 청소시간은 어수선한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다. 정리가 잘 되었던 교실도 짧은 시간에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자신의 청소구역에서 청소를 실시하지 않은 아이들로 인해 학급의 모든 질서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




자신들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집에 갈 생각만이 앞서는 아이들이다. 오직, 관심은 핸드폰 보관 가방이다. 이럴 때는 그냥 웃어버리는 것이 정답이다. 정말 아이들 말로 ‘노답’이다.




어찌됐든 학교생활에서는 어느 정도의 규칙이 있다. 그리고 규칙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친구와 친구, 친구와 후배, 친구와 선배 사이의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존재한다. 그 질서가 나름대로 우리의 학창시절에서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




 
3학년 국어수업을 마치고, 커피를 한 잔 타서 창가로 발길을 옮겼다. 창가 한 귀퉁이에 선인장 화분이 하나 있다. 평상시에는 신경 쓸 짬이 없었다. 가끔 물을 주었던 기억은 있다. 한파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어버린 선인장을 보며 내다 버릴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선인장에 싹이 트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착한 남학생이 짬을 내서 선인장에 물도 주고, 창문도 열어 환기도 시켰으며, 햇빛이 좋은 곳으로 화분을 옮겨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예 관심 뚝! 이었던 어리석음이 창피했다.




“아, 그랬구나, 기특한 녀석. 다른 친구들 모르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요렇게 예쁘게 선인장을 살려 놓았구나. 역시 미래가 촉망되는 친구야.”
 
선인장의 예는 아이들이 학업을 떠나 인성이라는 자연의 텃밭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아무 말이 없지만, 다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을 풀어가는 지혜를 통해 세상의 이치에 대한 질서를 배워가는 장소가 학교가 아닐까 한다. 그 질서에는 ‘햇빛’, ‘물’, ‘공기’라는 자양분이 필요하다. 여기에 ‘관심과 배려, 사랑’이 플러스 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마시던 커피를 들고 교정 뒤를 돌아, 텃밭 쪽으로 가볍게 걸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눈이 가득 쌓인 텃밭이다. 여기저기 비닐이 보이고, 이름 모를 풀들이 찬바람에 움직이고 있다. 지난 여름, 이곳에 상추와 토마토, 고추, 고구마 농사로 우리 아이들의 자연생태학습 장소였던 곳이다.




“아, 그렇구나! 이 작은 텃밭에도 질서는 있었구나. 씨를 뿌리고 물과 햇빛,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구나! 그래, 시간, 기다림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왜, 몰랐을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오늘도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치며, 아우성인 녀석들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 시절 물장난을 치면 선생님께 불려가 꾸지람을 듣던 기억이 떠올라 아이들을 부르고 싶다. 그렇지만, 난 기다림을 선택한다.




기다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물장난을 마무리한다. 까짓 옷이 조금 젖으면 어쩌고, 바닥이 지저분해지면 어떤가?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에는 질서가 있다.




그 질서의 주인공은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이다. 아이들이 중심이 된 학교현장, 그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 교육정책이 창의적인 학생과 열정 가득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는 바람직한 질서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라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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