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수필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름, 저마다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삶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들로 자신을 합리화하게 된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친구관계나, 선후배관계나, 수많은 관계에서 부지런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에 열중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며, ‘절망’하게 된다. 나약한 존재의 인간이기에 십자가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길이 힘들고 절망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지 않고, 자신이 세상의 최고인 것처럼, 세상의 잣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고백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과 욕망을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욕망’이란 놈은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더욱 더 의지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편안함’의 토대가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말씀을 듣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한다. 그렇다면 왜? 진리의 말씀을 멀리하고 배척했던 것일까?
‘부패한 인간은 예수님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마음 편하게 해주는 위로의 말씀을 원한다. 그런데 성경은 주의 말씀은 부패한 인간에게는 그 속을 찌르는 예리한 칼과 같다.’(히 4:12-13)
‘진리’의 말씀도 ‘기득권’을 가진 힘의 존재 앞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부패’다. 분명, 진리이고 이치에 합당한 것이라고, 권력 앞에 무릎 끓는 인간의 초라한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부패’다. 가족을, 직장을, 사회를, 역사를 위해 한 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바로 부패이다. 그 누가 알겠는가? 하며, 저질러버리는 것이 바로 ‘부패’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에게 배척 받고 무시 받은 것이 진리라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었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부패’ 앞에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인다. 이것은 현대문명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진리’를 찾아 ‘부패’한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함께 ‘나눔’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내 삶이, 계획이, 신앙이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부패’의 무리에 모든 것을 맡기도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부패’함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 능력이고 힘이다. 그런데 이 사랑이 없이 자기 힘과 의지를 가지고 세상만 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부패’의 발견은 자신에게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배려'다. 마음이 허전하고 가난한 우리들이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
세상의 주어진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오직 하나 ’예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 '행복'과 '사랑'으로 '부패'에 맞설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부패’한 삶의 가면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