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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행복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그래서 흔히들 말한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이별'은 '이별'이다. 어떤 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아련한 슬픔'이 '이별'이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별’은 ‘부모님과의 이별’,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친한 친구와의 이별’, ‘연인과의 이별’, ‘스승과 제자의 이별’ 등 다양하다. 이러한 ‘이별’은 대다수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이별’이다. ‘불의의 사고’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아닌 경우, 발전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별’과 ‘만남’은 빈번하다. ‘입학’을 통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만남', 졸업하는 어린 제자들과의 '이별'이 그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만남'과 '이별'에 예전 같은 '반가움'이나 '헤어지기 싫어 흘리는 눈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서가 많이 변해버린 것이다.




 
문화도 많이 변했다. ‘긴장과 설렘’, ‘아쉬움과 헤어짐’이 아닌 ‘만남의 축제’, ‘새로운 출발’의 첫 걸음으로 ‘입학’과 ‘졸업’이 진행된다. 그래서 요즘 입학식이나 졸업식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는다.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하여 축하해주고 다시 자신의 일자리로 복귀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도 ‘이별’은 ‘이별’이다. 졸업을 하고 자주 찾아오겠다던 제자는 16년이 넘도록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다. 누구, 누구를 통해 어떻게, 어떻게 살고 있다는 소식만이 전해 오곤 한다. 그래도 정을 많이 주었던 녀석인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경우가 있다.




 
아이들과의 ‘이별’은 미래를 위한 ‘이별’이라 그래도 덜 서운하다. 그러나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하시는 선배 교사들과의 ‘이별’은 정말 마음이 아프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긴 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래도 정년퇴직을 하시는 선생님은 덜 서운하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명예퇴직을 하시는 선배님과의 ‘이별’은 뒷맛이 씁쓸하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들은 ‘이별’하고, 만나고, 또 새로운 일상을 즐기며 추억들을 만들어 간다. 그 가운데 나도 떠밀리듯 살아간다. 슬퍼할 틈도 기뻐할 여유도 없이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이제는 야속하지도 않다. 너무나 속물이 되어버린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런 우리네 삶을 잡아둘 수도 없다. 그저 세월에 밀려 ‘만나고 이별’하는 순환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면'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용혜원 시인의 ‘커피 한 잔의 행복’처럼, 지나간 삶의 그리움과 다가올 삶의 기대 속에 우리는 늘 아쉬움을 가지고 산다.
 




                   
지나간 삶의 그리움과
다가올 삶의 기대 속에
우리는 늘 아쉬움이 있다
 
커피 한 잔에 행복을 느끼듯
소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작은 일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면
삶 자체가 좋을 듯 싶다
 
항상 무언가에 묶인 듯 풀려고 애쓰는 우리들
잠깐이라도 희망이라는 연을
삶 한가운데로 날릴 수 있다면
세상은 좀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때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싶다 (‘커피 한 잔의 행복’/용혜원)




 
우리는 사소한 커피 한 잔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이처럼 소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작은 일 속에서도 보람을 느껴보자.





그러면 시인의 시구처럼, 삶 자체가 좋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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