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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와 뿌리교육



온영두 <전북동화중학교장>



진부(陳腐)한 설명일지 몰라도 ‘孝’라는 글자는 노인(老)과 아들(子)이 합해진 글자로 아들이 늙으신 부모를 업고 있는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가 업어주고 부모가 늙을 때는 그 자식이 업어준다는 뜻이죠. 즉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과 자식이 부모에게 바치는 존경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부모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은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은 무조건적 사랑(아가페, Agape)이듯이 우리 자식들도 부모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는 아무 조건이 없는 의무와 당연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로서 그 도리를 다 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그리 된 것이라 긍정적 평가를 내립시다. 자식 입장에서 이 조건 저 핑계 다 따지다보면 부모에 대한 섭섭한 부분도 많겠지요. 그러나 모든 사정을 다 아우르고 이해합시다. 그래서 자식으로서 내 도리를 다하다 보면 복은 결국 나에게 올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부모께 효를 다하다 보면 자식까지도 배우게 되고 그 자식은 나에게 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나의 효행하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지요. 학교에서 매일 효행교육을 가르쳐도 이론일 뿐입니다. 결국 부모와 함께 효의 체험이 자식들에게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옛날 중국에 노래자(老來子)라는 사람은 70세가 되어서도 90세 되신 아버지를 위해 재롱을 부리고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어 아버님을 즐겁게 해드렸다고 합니다. 중종 때 효자 박구라는 사람은 병이 있는 홀어머니를 위해 겨울에 잉어를 구하고 잡수고 싶다던 복숭아를 간절한 기도로 얻었다는 효성의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습니다.






중국 고서 ‘채근담’에 보면 “조상의 은덕이 무엇인가? 지금 내 몸이 누리고 있는 바가 그것이니 마땅히 그 은덕을 갚는데 노력하라!” 즉, “뿌리 없는 나무 없고 꽃 없는 열매 없다”는 진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보면 자녀들에게 집안의 뿌리교육도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의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소개합니다. 이 분이 어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한 여학생이 안은 강아지가 컹컹거리자 말을 걸었답니다.




“학생, 강아지가 참 예쁘네요!” “그럼요, 이 강아지는 ‘피르첼’이예요. 네덜란드가 고향이고요, 얘 아버지는 히딩크 감독이 태어난 파르세펠츠이예요. 또 할아버지는 암스테르담이구요” “ 오, 학생 참 똑똑하네요.” “또 물어보세요?” “으음... 그럼 학생의 본향은 어디지?” “예? 본향이 무엇인데요?” “음 학생의 성씨를 말하지.” “예, oo씨예요.” “그럼 아버지와 할아버지 성함은?” “예, 아버지는 ooo이고요, 할아버지는 ... 음? 잘 모르겠는데요?”




 
정말 씁쓸한 이야기이지요.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 성함도 친구 이름을 부르듯 하고 할아버지 성함도 모르는 이 학생이 다름 아닌 우리의 자녀이자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미래의 청소년이라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고 합니다.


 



이는 청소년들의 탓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그간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간과한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내 자녀들의  효와 뿌리교육에 대한 소신을 다시 한 번 다져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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