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사는 거야 어디에 살건’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다고 해서,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환경이 다른 곳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사는 거야 어디에 살건’, 그리운 작가가 있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권정생 선생님이다.
권정생(1937∼2007) 선생님은 평생 모은 돈을 북쪽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는 병들고 홀몸이었다. 특히, 작가는 삶의 정겨움을 마무리하기까지 검소하게 생활해 왔다. 5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 내고, 책을 펴내고 받은 돈(인세)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
‘사는 거야 어디서 살건’ 작가는 굶주리는 북쪽의 아이들과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훈훈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권정생 선생님의 ‘사는 거야 어디서 살건’은 ‘글쓴이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가난하고 어려웠던 삶 속에서 깨달은 바를 담담한 어조로 써 내려간 자전적 수필’이다.
이 수필을 다시 차분하게 읽어보며, ‘어디서 살건 사는 것 답게’ 살고 있는 지를 반성해본다.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수필,극 필수편-오세호, 이승희, 정지영 엮음, 창비, 2011에 수록되어 있는 권정생의 ‘사는 거야 어디서 살건’ 의 일부분이다.
이곳 교회 문간방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은 1967년이었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 건물의 토담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그래도 그 조그만 방은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호지 문에 빗발이 쳐서 구멍이 뚫리고 개구리들이 그 구멍으로 뛰어 들어와 꽥꽥 울었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예배당 문간방에서 16년간 살다가 이곳 산 밑에 그 문간방과 비슷한 흙담집에 산다. 사는 거야 어디서 살건 그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굶주림, 그 속에서도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선진과 후진이 없어야 한다. 경제적 후진만으로 부끄러워야 할 이유가 없다.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배 속과 보리밥을 먹은 배 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되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 - 사는 거야 어디서 살건, 권정생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수필,극 필수편-오세호, 이승희, 정지영 엮음, 창비, 2011.12.)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굶주림’은 현대를 살아가는 문명화된 우리 시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분단국가라는 아픔이 존재하지만, 전쟁은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사는 거야 어디서 살건’, ‘남이든 북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남극이든 북극이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한 것이 아닐까?
위의 예문에는 ‘참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며,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문장이 있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 진정 아름답고 미래지향적이며, ‘참다운 인간의 길’임을 말이다.
‘사는 거야 어디에 살건’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그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가족’을 만들어 보자. 더 이상 미루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