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남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사>
가을 온갖 나무들이 잎을 떨군 후 푸르름이 사라진 긴 겨울을 지낸 온대지방 삶에 있어서 봄은 각별하다. 새 순이 돋아나는 신록의 봄 이전에 작년 부지런히 만들어 놓은 꽃망울이 일제히 피는 꽃구경이야말로 대표적인 봄맞이 행사이다. 남녘에서 산수유며 매화, 동백으로 시작되는 꽃나무들의 향연은 개나리, 진달래를 지나 왕벚나무로 향하게 될 것이고 모두들 이 꽃들을 보며 다가오는 생명의 신록을 맞이할 생각에 설렌다.
흔히들 외국에 가서 규모가 큰 멋진 정원을 보며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멋진 정원이 없을까하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유사한 문화권의 중국이나 일본에도 멋진 정원이 많은데 말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자연은 인간이 비교적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고 쉽게 주변에서 아름다운 경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공간에 자연 경관을 모방한 정원이 발달하기 보다는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정자가 주로 발달한 까닭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자연 즐기기는 주로 밖에서 찾지 애써 안으로 불러들이는 전통이 약한 듯하다. 더욱이 농경사회에서의 탈출만이 유일한 발전모델이었던 지난 세기를 겪은 후라 ‘식물 기르기’라는 취미가 현재 정착되지 못했다.
봄맞이 꽃구경은 환경에 많은 부담을 준다. 전국의 꽃구경 명소는 언제나 엄청난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로 뿐만 아니라 철쭉으로 유명한 국립공원 지리산 남원의 바래봉은 자연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인파로 매년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심지어 등산객에 의해 훼손된 산철쭉(Rhododendron yedoense var.poukhanense)이며 철쭉나무(R.schlippenbachii)의 자생지를 일본이 원산지인 영산홍(R. obtusum)으로 덕지덕지 땜질을 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자연스런 떠오르는 생각, ‘우리 주변에 자연을 불러오면 어떨까?’
자연을 가까이 하려는 우리네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이 잘 보전된 곳을 가서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 보전된 자연을 훼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 다음 방법으로는 주변에 자연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공원을 방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생활공간 밖에 있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즐기기는 어렵다. 이에 우리 생활 속에 자연을 대표하는 식물을 불러와서 몸과 마음을 기르자는 ‘도시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일상 속에서 언제든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에 식물을 두고 물주고 가지치고 퇴비를 주면서 식물의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연 현상을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이 멋진 취미생활이 외국에서는 무척 활발해서 우리가 외국여행을 하면서 식물들로 가득한 우아한 집들을 보면서 감탄하게 만든다.
그런데, 도시농업에서 생산된 부식거리로 인하여 도시민들이 농산물을 적게 구입할 것이라는 기우가 있다. 하지만 취미로 기른 채소나 과일의 양이 전체 소비되는 식재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적을 뿐더러, 이렇게 취미로 기르면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은 일부시기에 한정되므로 1년의 나머지 시기에는 농업인들이 기른 농산물을 구입하게 된다. 채소나 과실을 맛있게 먹어 본 식습관은 결국 더욱 많은 구매로 이어지리라. 마찬가지로 봄, 여름 꽃으로 화단을 화려하게 꾸면 본 이들이야말로 농업인이 생산한 자른 꽃을 사는 소비자가 될 것이다. 더욱이 본인들이 직접 길러보아 그 노고를 알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농산물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 또한 도시농업인은 본인이 작물을 기를 수 없는 시기에 기른다는 것이 많은 추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농업인에게 있어서 ‘우호적인’ 소비자가 될 것이다.
취미로 ‘식물 기르기’는 우리 생활 속에 자연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여가생활로서 식물을 직접 기르면서 채소나 과실처럼 먹는 것으로는 입과 몸을 기르고 꽃처럼 먹을 수 없는 것으로는 마음을 기를 수 있는 일거양득의 여가활동이다. 올 봄맞이는 자연이나 다른 이가 기른 꽃구경도 좋지만 내가 기른 꽃에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