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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배려"



안준식 <고창소방서장>



매서웠던 눈보라와 추위가 물러가고 어느덧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과 함께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인 우수(雨水)가 지나고 봄기운이 솔솔 풍기고 있다. 이렇게 날씨가 풀리고 봄이 다가오면 겨울철 보다 구급활동 횟수가 많아진다. 필자가 근무하는 고창군 구급통계를 살펴보면 봄철 구급활동은 겨울철에 비해 약 10% 상승한다. 원인을 분석하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비응급 환자들의 구급 신고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응급 환자들의 구급차 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항상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 생명의 갈림길에서 고군분투(孤軍奮鬪) 하고 있는 119 구급대원. 언제 어디에서나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와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이러한 각종 질병과 사건사고의 최전선에서 생명을 구호하는 이들은 촌각을 다투며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밤낮으로 애를 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응급 구조 활동에 큰 걸림돌이 있다. 바로 비응급 환자들의 구급차 이용이다. 응급상황이 아닌 단순 감기 및 가벼운 통증, 주취자들, 만성질환자로서 병원검진이나 입원 목적 등으로 구급차를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내가 세금을 내고 있으니 구급차 이용하는 것인데 왜 안되느냐’며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도 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하여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 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응급 환자로 규정하고 있다. 119 구급차는 응급환자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3년 통계에 따르면 비응급 환자의 119 구급차이용 비중은 전체의 58.8%, 63.9%, 67.3%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문제는 비응급 환자 이송 시 정말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이 구급서비스를 받지 못 할 수가 있는 점이다. 심정지, 뇌출혈, 각종 사고와 재해속의 중상자 등 1분 1초가 시급한 상황에 비응급 환자의 구급차 이용으로 인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가? 이는 본인, 내 가족, 주변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실제 고창군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평소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60대 남성은 갑작스런 가슴통증으로 119 신고를 하였는데 평소 5분이면 도착 했을 구급차가 지연되어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 남성은 하마터면 소중한 생명을 잃을 뻔했다. 그 당시 관할 구급대는 단순한 병원 외래진료 때문에 신고한 비응급 환자에게 출동중이였으며 다른 관할의 구급차가 오는 탓에 지연이 된 것이다. 고창군처럼 농촌지역은 소방관서 간의 거리가 멀고 구급대의 수가 적기 때문에 심정지 등 골든타임 내 도착율이 적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 비응급 환자의 구급대 이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2016년 3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여 상습 구급차이용자나 위급사항임을 거짓으로 알리고 119 구급차를 이용하여 해당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자에게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전북 소방본부와 고창소방서에서도 이러한 비응급 환자의 구급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각종 시책과 홍보를 펼치고 있다. 비응급 만성질환자의 경우 관할 보건소 및 유관기관에 협조를 구하고 있으며 언론보도, 대국민 캠페인, 이장단을 활용한 교육, 플래카드 등 광범위한 홍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 개정과 정책은 고식적 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소방청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 따르면 앞에서 언급한 비응급 상황에서 구급대원은 이송을 거절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환자가 응급상황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고 이용자 중에는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로서 원천적 차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 고령화와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119 구급신고는 해마다 폭주하고 있으나 소방인력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응급 이송 저감은 비응급 환자들의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비응급 신고는 119 구급대의 출동력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일이므로 다시 한 번 자제를  부탁드린다.




 
생명의 불빛을 잃어가는 사람을 직접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만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다.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보단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야 말로 생명을 구하는 한 방법임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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