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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還甲)



공은숙 <예수대교수>



나는 2월에 환갑을 맞이했다. 옛날에는 60주년이 되는 환갑은 최고로 중요한 잔치 날이었다. 還甲은 갑(甲)이 돌아왔다는(還) 의미로 우주(六十甲子)가 한 바퀴 돈 것으로 엄청나게 오래 장수한 것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영아사망을 포함하면 24살 정도이고 영아사망을 빼도 40살 후반이었다. 따라서 60살을 살면 아주 장수한 것이다.




 
六十甲子는 하늘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天干의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와 땅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地支의 子畜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결합으로 당해 시간의 하늘과 땅(즉, 우주)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올해는 天干의 戊와 地支의 戌이 결합되어 무술년이다. 또한 월·일·시에도 이러한 간지가 주어져 해당 시간의 우주적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믿어졌다. 우주의 흐름을 한 바퀴 경험한 것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월 환갑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문득 어릴 적에 경험했던 나의 큰아버지의 환갑잔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 봄이었을 것이다. 당시 큰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살고 계셨었다. 환갑 며칠 전부터 엄마는 큰 집에 음식을 장만하러 가셨었다. 생신 전 날 큰 집에는 넓은 마당과 앞 텃밭의 담장까지 임시적인 방들이 만들어졌었다. 땅바닥에는 벼를 말릴 때 사용하던 큰 멍석들이 깔렸고 천막으로 여러 방을 만들고 전구까지 칸칸이 매달려 있어 정말 멋진 야영텐트가 되었다. 오후가 지나면서 천막에 밀려드는 친척들로 차고 넘치고 음식상이 드나들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되었다.




또한 부엌과 우물과 이어진 뒷밭에도 멍석을 깔고 천막을 친 넓고 멋진 임시주방이 마련되었다. 여러 큰어머니들과 다른 친척 여자분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전을 부치고 부침찰떡을 만들고 삶은 고기를 썰고 나물을 만드느라 분주하였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 전체에 진동하여 나 같은 꼬마들은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였다. 말로만 들었던 친척이나 1년에 한번 뵙기도 힘든 친척 분들의 성함을 건성으로 들으며 오랜만에 만난 또래의 사촌형제들과 무리를 지어 놀면서 종일 드나들며 맛있는 음식을 맘껏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그 때가 지금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큰아버지 환갑 날 아침에는 천막을 걷은 넓고 깨끗한 멍석 위에 성대한 잔치 상이 차려졌었다. 모든 친척들과 자녀들은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멍석위로 올라와 가족 순서대로 앉아서, 조용히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오래 전에 고희 잔치를 넘기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항렬 순으로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고, 무병장수하시라는 덕담을 드렸었다. 다음으로 환갑을 맞으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께는 가족 단위로 절을 하고, 술을 올리고, 준비한 선물을 드렸었다. 수십 명의 가족들이 모여 연령순과 항렬 순으로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는 동안, 우리 모두는 가족관계를 설명하는 다른 친척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환갑이 우주가 한 바퀴 돌아 자신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는 믿음도 사라졌고, 또한 평균수명이 80살이 넘었고, 100살까지 사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면서, 60살은 장수의 의미보다는 곧 노인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생겼다. 고단한 은퇴자로서의 20-30년의 노인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환갑잔치는 거의 사라졌다. 나도 우리 가족과 외식을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곧 노인이 된다는 생각에 그리고 앞으로의 기나긴 은퇴생활을 어떻게 지내야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계획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어떻게 노년생활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건강하게 지내야하는지? 생활비는? 자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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