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비 오는 날에 출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평상시보다 도로는 복잡하다. 그래도 나는 비 내리는 날이 마냥 좋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비가 내리는 날에 나는 더욱 차분해짐을 피부로 느끼곤 한다. ‘비’라는 존재가 마음의 근심 걱정을 덜어내고 안정감을 주는 존재로 나의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하면 떠오르는 소중한 추억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정말 철없이 비닐우산을 쓰고, 시내를 누비며 데이트하던 추억이다. 어깨에 흠뻑 떨어진 비가 야속하지 않고, 언제 젖었는지도 모른 채 수많은 대화를 나눈 아름다운 추억이다. 지금이야, 좋은 우산이 우리들 가까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게는 비닐우산도 감지덕지였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수많은 이야기를 허공에 날려 보낸 추억이 너무나 그립다. 지금도 옆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비 오는 날 데이트하던 그녀’가 사랑스럽다.
가끔은 ‘비 오는 그날’, ‘비닐우산’을 화두로 삼아 웃음 짓곤 한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비가 내려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란 말인가?
그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있다. 배따라기(이혜민 글과 곡)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다.
마침, 오늘도 그 시절처럼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봄에 비가 내리면 종종 매스컴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추억의 노래다. 콧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그댄 바람 소리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바람 불면 바람 속을 걸어요
-(중략)-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와
사랑을 심어놓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그댄 낙엽지면 무슨 생각하나요
나는요 둘이 걷던 솔밭 길 홀로 걸어요
솔밭 길 홀로 걸어요 솔밭 길 홀로 걸어요.
사람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비’에 대한 감정이입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 천 가지 만 가지의 감정은 다 소중하다. 그래서 ‘비’에 대한 추억을 하나 이상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중요하지 않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속의 하나로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오는’, ‘비’와 함께 행복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