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영두 <중국 연변대학교 교수>
물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니르바나(열반, 성불, 깨달음)’의 경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경지는 ‘진리의 세계’로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Dharma)’로 표기하며, 이를 중국에서는 ‘법(法)’이라 번역한답니다. 그런데 ‘법(法)’이라는 이 글자를 두 개로 쪼개면 ‘물’이라는 뜻(氵→水)과 ‘간다(去)’는 뜻으로 나뉩니다. 그러므로 진리로서의 ‘법’이란 ‘물이 흘러가는 이치’로 해석됩니다. 즉 부처님이 설파하신 진리의 본질은 ‘물’의 속성 그 자체로 보았던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요한이 사람들에게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洗禮)를 준 예가 성경에 있으며, 힌두교에서도 문헌에 보면 인간이 죽은 후 그 영혼이 저승으로 갈 때 ‘베따라니 강’을 건너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듯 ‘물’은 우주의 불멸의 진리를 상징하며 종교적으로는 아주 중요하고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물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사람에게 있어 생명의 시작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체내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순간에도 물의 모습이요, 어머니의 몸속에서 자라는 동안에도 양수(羊水)라는 물속에서 물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잘 지내다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사람은 세상에 나와서도 모유나 우유 같은 물만 먹고 자랍니다.
그리고 체내의 수분함량은 몸의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체내에 물이 1-2%가 부족하면 심한 갈증을, 5% 정도가 부족하면 혼수상태, 12% 정도가 부족하면 생명까지도 잃는답니다. 이렇게 물은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바다라는 견해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 몸을 분석해 보면 그럴듯합니다. 여성의 양수 성분이 바닷물과 아주 비슷하며, 사람 몸도 바닷물에 들어있는 나트륨, 칼슘, 염소, 칼륨, 마그네슘 등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들어 있다는 점이 하나의 증거입니다. 사람이 물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편안해지며 헤엄을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아닐까요?
물을 보면 인생의 삶의 철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현들이 삶을 설파할 때 물의 성질이나 특성 등을 내세웁니다. 공자나 노자 같은 성현들은 물의 덕성스러움을 들어 군자의 모습이라 하든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든지, 물의 좋은 모습을 발견해 삶의 교훈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노자의 말씀이 있는데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라"라고 역설합니다.
이는 물의 진리를 배우라고 강조한 것이죠. 즉 물은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달라지듯 유연성과 순응력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또한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지침을 줍니다.
한편 “물은 이용할 수 있어도 길들일 수 없다”고 10세기 초 일본 시인 키노 쓰라유키(紀貫之)가 말했습니다. 오래 전 쓰나미의 물기둥 앞에 여지없이 폐허가 되어버린 일본을 보면 물에 대한 두려움도 느껴집니다. 이처럼 흔한 물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깊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가끔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시면서 사색에도 한 번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