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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참 어렵다.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사는 것이 참 어렵다. 삶의 현장에서 한 번쯤은 누구나 ‘갈등’을 경험한다. 그 ‘갈등’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휘말리게 되고, 그 갈등의 중심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 난감한 일이다.





이럴 때는 ‘시간이 약’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지만, 여전히 마음은 불편하다.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가족의 갈등은 그래도 덜 불편하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의 갈등은 마음을 무척 힘들게 한다. 아무리 대화로 갈등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아닌 상처’는 치유가 쉽지 않다.
 




사는 것이 참 어렵다. 힘든 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원만하게 지내던 동료나 선배, 후배와의 갈등은 일방적일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방적인 갈등이다. 이 갈등은 그 깊이를 심화시켜 정신적인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언어폭력’, ‘왕따’, ‘업무가중’ 등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정신적 갈등은 한 영혼을 짓밟아 버릴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갈등이 시작되면, 누구도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갈등의 원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다는 사회적인 묵시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언쟁에 욕설, 법정소송에 이르는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직장’이, ‘학교’가, ‘삶의 터전’이 발을 내딛기가 꺼려진다면, 서로서로에게 암울한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이 암울한 미래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답안이다. 그 암울한 답안을 투명한 미래도 발전시킬 방법이 무엇인지? 해답을 모르는 우리가 아니다.




 
사는 것이 참 어렵다. 그렇다면, ‘갈등’을 삶의 활력소로 받아들여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해서 그 중심을 잡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사람들의 마음에는 셀 수 없는 기하학적 마음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And forgive us our offenses, as we have forgiven our offenders.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The Lord's Prayer)





사는 것이 참 어렵다. 정답은 없다. 아니, 정답은 이미 나와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정답을 알고 있는 나약한 인간이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배려’와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가 스쳐 지나간다. ‘배려’와 ‘양보’, ‘역지사지’가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무리한 욕심인가?




 
사는 것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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