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번에는 조선시대 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안김씨 김홍원(1571~1645)은 환갑을 바로 앞둔 59세의 나이에 다른 사람도 아닌 첩 끝치[唜致]의 고변에 의해 역모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고변은 무고로 판결났지만, 사회 불만 인물들과 가까워 서로 자주 모인 정황이 드러나 그대로 석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조정에서는 그를 유배형에 처하기로 했다.
결국 김홍원은 4년 3개월 동안 험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끝치는 남편을 무고하게 고발한 혐의가 인정되어 윤리강상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한양 당고개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김홍원의 일생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1588년 진사시에 18세 나이로 합격하였다. 22세가 되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양곡 100여 석을 의주에 피난살이 하던 선조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그 후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했는데 당시 김홍원의 의병활동이 조정에 보고되어 통정대부라는 품계가 내려왔다. 그 후 금산군수, 원주목사, 담양부사 등에 임명되었다.
이 여인과의 인연은 처음부터 불행을 예고하는 듯이 시작되었다. 1615년(광해군7) 무렵 김홍원이 오위장(五衛將)으로 한양 사직동에서 임시 거처하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집 약방사령(藥房使令) 김인(金仁)의 아내 끝치가 살고 있었다.
당시 끝치는 김인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다. 김홍원은 공초 내용에서 밤중에 끝치가 찾아와 ‘남편에게 쫓겨나 갈 곳이 없으니 첩으로 삼지 않으면 눈앞에서 죽겠다’고 협박하였다. 김홍원은 이에 굴복해 간통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발언에서 어딘지 모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끝치는 당시 권세가 한찬남(韓纘男)의 처와 알고 지내고, 궁녀와도 모종의 연관이 있었다. 그후 애정이 식은 김홍원이 이혼의 뜻을 밝히자 끝치가 차고 있던 칼을 꺼내어 스스로 목을 찔러 피가 낭자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김홍원은 말(馬), 노비, 선박, 가옥 등을 선물로 주면서 끝치의 비위를 맞추며 회유하려고 무엇이든지 해주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이 ‘자네는 외적을 만났을 때에 의기가 넘쳐 전공을 세우더니, 한 여자에게 곤란을 당함이 왜 이렇게 심한가!’라고 조롱하기도 하였다. 한찬남과 궁중의 세력을 끼고 있는 끝치의 독기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김홍원은 답변하였다. 끝치의 고변사건은 남녀 간의 불화와 당시 정국이 복잡하게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남원, 순창, 옥과 세 고을이 교차되는 경계에 위치한 제암(霽巖) 근처의 경치는 자연을 완상하기에 좋았던 모양이다. 그 아래 ‘제호(霽湖)’라는 호수가 있었다. 김홍원의 공초에 의하면, 순창의 제암 물가에 4칸짜리 제암정을 만들어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왕래했다고 한다. 그 곳은 침과 뜸으로 아픈 몸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는 일종의 휴양소 역할을 하였다. 이 곳 주변지역에서 침구시술로 유명한 의원 방대순(房大順)이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끝치가 부안에 내려온 오라버니에게 한글편지를 보내 결국 승정원에 고변하였다. 끝치의 고변 사건 한 달 전 송광유가 고변한 옥사의 공초에서도 제암정 모임은 진술된 적이 있었다. 남원에 사는 윤운구가 인조반정 이후 논상(論賞)에 대한 불만과 이씨왕조의 쇠망, 진인(眞人)과 참서, 서얼의 사회적 불만 등 실로 엄청난 사안이었다.
송광유 고변 공초에서 김홍원이 윤운구 등이 모인 정자의 주인이었다는 점은 확인되었지만, 직접 역모에 참여했다는 진술은 없었다. 그래서 인조와 추국청은 김홍원을 붙잡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끝치가 고변한 한글편지에 제암정이 다시 거론되어 결국 김홍원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김홍원이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된 10개월 후 경상도 흥해로 옮겨 유배생활을 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후 1633년(인조11) 5월 12일 드디어 김홍원은 4년 3개월 만에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이후 김홍원은 세상일을 끊고 변산 남쪽 웅연(熊淵)에 해산헌(海山軒)을 짓고 날마다 작은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위 내용은 '추안급국안'에 자세히 실려 있다. 신문지면 상 사건의 정황과 맥락에 대해 소상히 소개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고전에는 조선시대 전북 지역을 무대로 펼쳐진 인물들과 색다른 이야기가 묻혀있는데, 21세기 스토리텔링 및 문화콘텐츠 활용 자산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