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우정,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글씨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친구들이 그리운 것은, 고향의 추억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은,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보고 싶은 어린 시절 악동들이 그리워지는 것을, ‘우정’이라 말하고 싶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 가던 시절, 아버지의 묵직한 손에 이끌려 일만하던 그 시절, 놀고 싶어 안달이 나던 그 시절, 동네 이곳저곳에서는 아이들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우정


                            정호승


내 가슴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글씨 하나 있다 
과수원을 하는 경숙이 집에 놀러갔다가 
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배의 가슴에다 
머리핀으로 가늘고 조그맣게 쓴 글씨 
맑은 햇살에 
둥글게 둥글게 배가 커질 때마다 
커다랗게 자란 글씨
우정






 
놀고 싶은 마음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어린 마음에 안타깝게도 밭에서 거름을 내고, 풀과 씨름하다 보면, 휴일의 절반은 다 지나가 버린다. 평일에도 이른 새벽에 논이나 밭에 나가 아버지를 도와 드려야 했다.





등교시간에 임박해서 아침 한 술 뜨고, 학교로 향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30여분 걸어서 등교하다보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선배, 후배가 몰려나온다. 시끌벅적했던 등굣길, 그 길도 이제는 추억의 뒤안길이 되었다.





나의 성장과 함께 했던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
 


 
그 우정의 친구를 만났다. 2017년 봄, 징검다리는 밴드였다. 밴드 개인 대화방에 조심스럽게 내민 얼굴, ‘혹시 중학교 친구 여범이’였다.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 ‘이도수’, 보고 싶었던 ‘이도수’ 친구의 문자였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짧았다. 그렇지만, 친구의 우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30년이 넘은 시간, 그 시간은 숫자에 불과했다. 안성에 살고 있다는 친구, 보고 싶은 친구 ‘이도수’와 함께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싶은 시간이다.




 
내 가슴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글씨 하나, ‘우정’, 그 ‘우정’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정말 어렵게 연락이 닿은 친구 ‘이도수’, 밴드와 카톡 프로필을 통해 만난 얼굴은 예전 그대로다. 서로 사회생활로 바쁘게 살아가지만, 마음은 이심전심인 것이 ‘우정’이 아닐까? 설령, 나 혼자만의 ‘우정’이라도 나는 행복하다. ‘우정’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우리들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친구의 이름이 있다. 미세먼지 정도의 ‘그리움’과 ‘보고픔’이 있다면, 바로 그 ‘그리움’을 전해보자. 메일, 밴드, 카톡, 페북 등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전화다. 전화를 통한 만남이 진정한 ‘우정’을 확인하고 쌓아가는 길일 것이다.





둥글둥글 커가는 ‘우정’을 기대해본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