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촌은 이런 저런 씨앗을 파종하고 어린 묘를 정식하느라 한 참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는 쌀, 양파 등 농산물의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이라는 풍년의 역설이 오버랩(overlap)되는 이유는 뭘까? 농산물은 날씨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적정생산이 어렵고 수입물량 증가로 수급조절도 쉽지 않지만, 관계기관에서는 나름의 대책을 세워 농업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차제에 농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우리 농산물이 다양화하는 소비시장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대응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농촌진흥청 소비자패널(635가구) 구매자료에 의하면 가구당 연간 평균 기타 곡물류 구매액은 2010년 41원에서 2016년 4,433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곡물섭취 방식으로 밥을 지어먹는 쌀·두류·잡곡은 소비가 정체하거나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기능성 곡물인 햄프씨드·아마씨드 등 기타 곡물류 구매액은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구당 연간 평균 장류 구매액은 2012년 45,000원에서 2016년 39,000원으로 6,000원이 감소했으나, 이국적인 소스(머스타드 소스·중화·일식·동남아 소스·칠리·살사 소스·굴소스 등)구매의 다양화로 2012년 케찹과 마요네즈 이외의 소스류 구매액이 증가하기 시작해 2010년 약 5,800원에서 2016년 8,300원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국내 커피문화도 인스턴트 믹스커피 시장이 축소되는 대신 개별 브랜드 커피전문점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구입해서 바로 마실 수 있는 RTD커피·캡슐커피·인스턴트 원두커피 등으로 커피시장이 다양화하고 있다.
이처럼 소득 3만불 시대 우리 소비자들도 이젠 싸고 양이 많은 것보다는 자기 용도와 취향을 따져 구매하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우리 농산물도 그저 값싸고 획일적인 것을 뛰어넘어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다. 품목 및 종자선택에서부터 재배방식의 다변화, 가공 및 유통방법의 개선 등 기존 관행을 꼼꼼히 되짚어보고 소비성향 변화에 부응하여 새롭게 전략을 세워야 승산이 있다.
과거 성장위주의 획일적인 대량생산 방식의 답습을 지양하고, 1~2인 가족 증가와 식품소비패턴 변화에 발맞춰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다양한 부문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 첫걸음은 품목 다양화와 더불어 현명한 종자선택이 아닐까 한다. 쌀의 경우 그저 쌀밥용 쌀에 머물지 않고, 용도와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품종들을 파종해서 다이어트 쌀·키 크는 쌀·국수용 쌀·향기 쌀 등 특화된 쌀이 사전 계약을 통해 생산돼 소비시장에 공급된다면 농가 간, 지역 간 과당경쟁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식물육종학자 우장춘 박사는 ‘씨앗은 하나의 우주이며 종자산업은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미래 성장산업이자 건강한 먹거리 생산은 물론 친환경에너지 원료와 질병치료에 필요한 물질까지 지닌 보물창고다’라고 갈파했다.
우리나라 토종밀인 앉은뱅이 밀을 이용하여 품종개량을 하여 당시 기아에 허덕이던 동남아시아의 식량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농학자로서 세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노먼 박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종자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잘 이용하면 우리농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맛은 물론 병해충 및 환경내성이 강한 토종종자를 체계적으로 보존, 증식하고 다양한 용도에 맞게 품종을 육성해 활용하는 것도 세련된 식품 소비문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 신중하게 선택한 다양한 작목의 씨앗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의 시대에 새로운 식문화 소비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