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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지식과 우리지역 농산물 마케팅



김건우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순갱로회(蓴羹?膾)’라는 말이 있다. 순채국과 농어회라는 뜻이다.




중국 진(晉)나라 장한(張翰)이라는 인물이 벼슬살이를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이 나서 곧장 사직하고 귀향했다는 고사이다. 장한의 고향이 오중(吳中)이니 지금의 소주(蘇州) 지역이다. 자신이 사는 땅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참으로 낭만적인 일화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살펴보면 중종 25년(1530년) 국가 차원에서 증보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제의 토산물로 ‘순채’를 기재하고 있다. 물론 그 후 영조 대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도 김제의 토산물로 순채가 포함되어 있다.




 
김제 순채의 인기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준사이(じゅんさい)라고 하여 순채의 인기가 높아 환상의 풀이라고 하며 산에는 송이, 밭에는 인삼, 물에서는 순채를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손꼽고 있다.




 
1929년 발행된 '전북의 안내 책갈피(全北の?)'에서는 ‘오래된 연못에 자생하는 순채는 여린 잎(嫩菜)을 채취해 병에 담아 식사나 술자리에 제공한다. 깔끔하고 매우 맛있다. 김제지방 명산품이다.’라고 소개하였다. 잡지 '조선(朝鮮)' 1930년 7월호에서도 전북의 특산으로 김제군 김제면 순채를 꼽았다.




 
1933년 철도직원이었던 한 일본인이 일본 사람을 대상으로 조선의 특산물을 소개한 '조선의 특산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朝鮮の特産どてに何があるか)'라는 책자를 간행했다.






다음은 이 책자에서 김제 순채에 관한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다.





김제 순채는 최근 미츠이 물산에 의해 유명해졌다. 김제의 여관(신풍관)의 주인 이시이 소타로가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순채에 주목하며 1912년부터 정제해서 판매했다. 조선 판매용은 ‘김제 명산 순채’라 쓴 라벨을 붙였고, 일본 수출용은 일본상인들의 요구로 라벨 없이 상자로 수출했다. 조선에서는 경성이 가장 큰 거래처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군산을 경유해 오사카, 나고야, 시모노세키는 물론 요코하마까지 수출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순수기호식품인 순채를 Citrus(감귤류)와 혼합하는 가공법도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각 지자체마다 방송매체를 통해 지역 농산물, 먹거리 지역 축제 등을 홍보하기 위해 온갖 노력과 예산을 쏟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지역 특산물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높음과 동시에 지역 특산물의 발굴·개발과 브랜드화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웰빙시대 건강의 소중함과 맛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설파하듯이 TV에서는 음식프로그램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방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고문헌 속에는 지역 농산물, 먹거리에 대한 지식정보가 풍부히 내재되어 있다. 기초 조사를 시작으로 데이터 자료를 시계열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농진청 지원연구사업인 ‘고문헌 전통지식을 활용한 농산업 지역마케팅 활성화 방안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전통지식의 창의적 활용을 기반한 지역 농산물 마케팅이란 지리적 특성, 역사와 전통성, 지역과의 연계 스토리텔링이 중요사항이라는 점을 느끼고 있다. 
 


 
조선초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500년 이상 전북 김제는 순채의 명산지였다. 그 후 도시화, 산업화, 기후환경의 변화를 거치면서 김제 순채는 우리 기억의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세월의 거대한 풍화작용 속에서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필자는 김제 순채를 복원해야 한다는 천근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옛것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채 현재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는지를 한 사례를 가지고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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