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석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소장·농업연구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계절마다 특색이 넘쳐난다. 봄이 되면 움츠러든 몸과 마음에 원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달래나 냉이로 만든 봄나물을 즐겨 먹고, 여름이 되면 물이 많은 참외나 수박 등이 목마름을 달래준다. 가을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와 감, 황금빛 배 등이 풍성함을 한껏 뽐내 준다.
어느 순간부터 우린 계절을 잃어 버렸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농업기술과 힘을 합하게 된 후로 한겨울에 만나는 딸기와 수박, 참외, 연중 언제나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사과와 배 등은 계절이 주는 특별함을 느낄 수 없게 해준다. 먹고 싶은 것들을 언제나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에 계절과 함께 호흡하면서 얻어왔던 건강한 삶을 조금씩 저당 잡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봄이 되면 과수원에는 하얀 배꽃이 피고, 부지런한 농부의 발걸음과 벌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으면서 배가 자라기 시작한다. 뜨거운 여름을 질주하는 따가운 햇살과 잎을 갈라놓는 거센 바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키워낸 과실들은 가을이 되면 저마다의 맛과 향기를 가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잘 익은 과실은 품종 고유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비교적 먹기 좋고 단맛이 풍부하며 식미가 우수하다. 이 시기를 지난 과실은 다시 식감이 저하되고 그 과실 본연의 맛을 나타내지 못한다.
과수 농가는 유통 중에도 지속적으로 변하는 내부 품질을 고려하여 소비자가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를 고려하여 수확하고, 품질 변화가 최소화 될 수 있는 다양한 보관기술을 개발하여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일 년 내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과실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과실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다양한 기능성 물질들이 있다. 배에는 항암, 항염, 항산화에 효과가 있는 말락시닉산(Malaxinic acid), 클로로제닉산(Chlorogenic acid), 항동맥경화에 효과가 있는 쿼세틴(Quercetin) 등의 기능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체내에 흡수된 알코올 분해, 암을 유발하는 물질의 체외 배출 촉진 등의 기능도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과실을 주기적으로 먹는 식습관은 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맛이 좋은 상태로 수확한 과실도 저장기간이 지나면 점차 맛이 떨어지고 품질이 저하된다. 과실에 포함된 기능성 물질도 과실이 수확된 이후에는 내부적으로 분해되어 점차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맛도 좋고 건강에 유익한 기능성 물질을 보다 많이 먹기 위해서는 금방 수확한 과실을 구입하여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이를 위해 수확시기가 다양한 여러 품종을 순차적으로 생산하여 저장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배는 8월 중순부터 11월 상순까지 수확기가 다른 배들이 생산현장에 보급되어 시장에 출하를 준비한다. 아직 일반 과일시장에서 쉽게 만날 수는 없지만 인터넷 등 SNS를 통해 제철에 생산된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배들을 구입하여 이용하는 소비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대형 농산물유통업체 등 일반적인 과일판매상에서도 시기별로 수확되는 신선한 과실을 준비하여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는 시기별로 좋아하는 품종의 배를 골라먹을 수 있게 된다. 맛있고 영양가치가 높은 배를 먹고 싶다면 철에 맞게 적기에 수확돼 유통 중인 품종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알아보고, 시장에서 해당 품종을 콕 찍어 구매를 요청하는 작은 습관을 만들어 보자. 적극적인 소비자의 구매행동이 보다 좋은 과실이 유통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