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순창 지역을 대표하는 장류로 고추장을 들 수 있다.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및 순창장류축제를 통해 홍보와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순창 고추장은 현대에 만들어진 전통이 아닌 조선시대 뚜렷한 문헌 근거가 있는 음식문화이다. 숙종 어의(御醫) 이시필(李時弼)이 쓴 18세기 생활문화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문사설'에 '순창 고추장 제조법'이 실린 정도로, 당시에도 유명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사료에서 순창 고추장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순창 인화면(仁化面) 마흘리(馬屹里)에 거주한 전주이씨 집안에서 순창 고추장을 선물한 몇 장의 편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편지 서식집을 보면, 선물에 관한 투식이 실려 있을 정도로 양반 관계망에서 선물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달력과 부채를 비롯해 종이, 문방구 등 각종 물품에서 음식물까지 수많은 종류의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순창 전주이씨 집안에 현재 남아있는 편지는 대부분 보은(報恩) 돈론리(현재 탄부면 평각리)와 한양에 거주했던 이세보(李世輔) 집안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순창 전주이씨는 선조(宣祖)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인성군의 후손으로, 이환규(李桓圭)의 둘째 아들 이종백이 한양에서 순창으로 내려오면서 본격적으로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이후 이종백의 손자 이수인(李秀仁) 대에 이르면 순창지역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세보는 철종의 종제(從弟)이자, 흥선대원군의 육촌 아우로, 1860년(철종11) 11월 세도가 안동김씨에 의해 전라도 강진현 신지도에 위리안치 되었다. 3년 뒤 1863년(고종 즉위년) 12월에 석방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석방됐다. 유배에서 풀려난 이세보는 그 후 1865년(고종 2년)부터 벼슬을 시작하여 여주목사,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승승장구했다.
다음은 1868년(고종 5년) 1월 18일 보은에 거주한 경평군 이세보가 순창 마동(馬洞 마흘리)에 보낸 편지이다.
‘고맙게 고추장(古秋醬)을 먼 이곳까지 보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야 어찌 물품에 있겠습니까. 더욱 두터운 성의가 많아 감격스럽습니다. 언제쯤 왕림하시겠습니까. 간절히 바랍니다. 이곳에서 극히 구하기 어려운 물품은 고춧가루입니다. 부디 몇 말을 구해 보내주시면, 값은 편지로 알려주시면 즉시 갚겠습니다. 잊지 마시고 각별히 주선해주십시오. 거듭 말씀드립니다.’
새해 안부를 말하고서 보낸 준 고추장에 감사드리며 이곳 보은에는 고춧가루를 구하기 매우 어려우니 꼭 보내 주고 값은 편지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편지와 함께 이세보는 달력 1건을 보내줬다. 이보다 앞서 1864년(고종 1년) 2월 18일 이용섭은 신지도에서 해배된 이세보를 만나고 이별 후 문안 편지를 올렸다. 1865년(고종 2년) 1월 15일, 윤5월 10일, 11월 29일 편지들을 보면, 이용섭은 보은에 머물면서 경평군 이세보의 정치적 행보와 한양 소식을 수시로 순창 본가에 알리고 있다. 이용섭이 보은을 세거지로 둔 권세가인 친척인 이세보의 집안에 머물며 벼슬길을 도모한 듯하다.
1874년(고종 11년) 10월 21일 보은에 사는 이종응(李宗應)이 순창에 보낸 답장에서도 보내준 고추를 받아서 잘 사용해 감사했다. 이어 부탁한 고춧가루를 유념해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두 차례 보내주신 고추는 긴요히 잘 썼습니다. 다음해 봄 고추장을 만들 때 오히려 부족하다고 합니다. 고춧가루 5, 6되를 더욱 유념하여 낭패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거듭 부탁드립니다.’
1874년 11월 15일 이종응은 순창에 두 차례 보내줬던 고추를 긴요히 사용했고, 다음해 봄은 고추장이 귀하지 않다고 하니 고춧가루 5, 6되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고춧가루 부탁뿐만 아니라 선산 관리, 산송, 매매 대금 환수 등 보은 측에서 여러 차례 부탁했다. 순창 전주이씨 가문은 편지와 선물을 통해 종중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관계망을 형성했다. 이러한 관계망에서 선물이라는 매개물이 중요한데 순창 전주이씨 가문은 순창 고추장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지역 특산물에는 감추어진 스토리가 있다. 이제는 전통지식을 기반으로 한 지역 특산물의 역사성을 밝히는 작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스토리텔링과 결합시켜 지역 농산물 마케팅 활성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