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선 <고창소방서장>
소방서 업무를 벗어나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이다. 2018년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일명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가족과 한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값진 삶으로 세 아이의 고민거리를 공감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도 이 소확행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가끔 올망졸망 앉은 아이들에게 ‘나무의 밑동을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교육하곤 한다. 큰 꿈을 꾸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안타까움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이 전달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이다.
다시 소방서 업무로 돌아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방대원들은 화재진압 시 얼굴에 면체마스크를 착용한다. 면체 마스크를 쓰고, 화염이라는 숲을 보고 진압하기 위해 눈앞의 나무 밑동을 바라본다. 이 밑동의 작은 불씨라도 재 발화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세심한 진압이 요구된다. 특히 면체 마스크로 바라보는 화염은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다. 좁은 시야로 농연이 짙은 현장에서 인명구조와 화재진압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소방대원은 그만큼 위험요소를 안고 활동한다. 이것이 소방대원이 화염과 맞서는 운명이자 숙명이라면 가혹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3월 발생한 홍제동 화재사건 역시 소방관의 운명적 비극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다. 방화복에 묻은 재 가루를 털기도 전에 맡은 임무를 끝까지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순직한 소방관에게 애도의 마음이 앞선다. 이처럼 면체 마스크로 보는 화재는 위험요소까지 큰 그림으로 볼 수 없음에 현장지휘자 입장에서도 늘 불안하다. 육감을 키우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래서 면체 마스크로 바라보는 화염의 위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화재가 발생하여 현장에 도착하면 건물의 특성, 화재진압 경로 파악, 발화원의 종류 등 큰 그림을 바라보고 현장에 진입하게 된다. 현장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면체 마스크로 바라보는 시야에 의존한 채 소방 활동을 전개한다.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동시에 실시하는 동안 극도의 긴장감에 시야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둠과 메케한 냄새가 진동할 뿐 그 때부터 화염과 자신의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에 예기치 못한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면체의 특성상 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방대원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면체 마스크가 위험으로부터는 사각지대인 것이다. 관계자라면 눈 감고도 주위를 그림처럼 그릴 수 있지만 소방관은 오직 화염만을 중점으로 움직이게 된다.
사고사례를 살펴봐도 현장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진압 중 사고가 발생한다. 이러한 사고를 감소시키고자 현지적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화재취약건물과 다수사상자 발생 우려 대상물에 구조적 특성과 동선을 파악함으로써 면체 마스크로 바라보는 사각지대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머릿속에 영상을 재연하여 위험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훈련이다. 또한 예측 가능한 위험요소를 파악하여 사전에 예방하고 화재사고 발생할 경우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 해소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현장 활동 전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면체 마스크에 의존하던 진압활동에서 면체 마스크에 건물의 특성이나 동선, 예측 가능한 위험 요소가 영상 프레임처럼 스쳐지나가는 선행적 훈련이 앞으로도 지속되어야한다. 면체 마스크의 테두리에 갇혀 나무의 밑동만을 보는 우매함에서 큰 숲을 그릴 수 있는 영특함이 발휘되어 안전한 현장대응이 돼야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면체에 묻은 좁은 시야를 닦아내고 안전이라는 빛줄기가 면체에 비춰 비극의 역사 펜촉에 잉크가 마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