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숙<농촌진흥청 농촌지원국 농촌자원과장>
올 여름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바짝 타들어간 논밭에 태풍 ‘솔릭’이 몰고 온 비가 해갈에 도움을 줬다. 또한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의 기세도 살짝 누그러뜨렸다. 아직 더운 기운이 남아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덕분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만 같다.
요즘 우리 농촌은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 함께 여물어가는 농작물 관리로 여념이 없다.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며 농작업에 열중하는 농업인에게 이 계절은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서막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농작업에 열중하다보면 개인안전을 예사롭게 생각하기 쉽다. 특히 들판이나 풀숲 등 야외에서 낮은 자세로 농작업을 하는 경우 야생진드기를 매개로 한 감염병을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지난 5월 야생진드기에 물린 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감염되어 농업인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여럿 발생했다. 올해 들어 감염 환자 발생 건수는 8월 중순 기준 142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은 봄부터 늦가을 사이에 SFTS 바이러스를 보유한 야생진드기에 물려 발생한다. 주로 작은 소피참진드기가 감염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치사율이 20%에 달해 ‘살인진드기’로도 불린다. 이 진드기에 물리면 고열과 함께 구토, 설사와 같은 소화기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 매년 1만 건 정도 발생하는 쯔쯔가무시증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8월 중순부터 10월 초는 쯔쯔가무시증을 일으키는 털진드기류에 노출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털진드기에 물리면 2~3주 안에 고열과 근육통이 발생해 마치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물린 곳에 검은 딱지가 생긴다.
아직까지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을 예방하는 백신과 표적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야생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며, 쯔쯔가무시증은 감염 초기에 독시사이틀린 등 적절한 항생제로 치료할 경우 비교적 용이하게 회복되므로 조기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야생진드기로부터 안전한 농작업을 위한 예방수칙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농작업 전에는 가능한 소매가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어 피부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소매 끝을 꼼꼼하게 여미고, 바지 단은 양말 안쪽으로 집어넣어 진드기가 옷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농작업 중에는 풀밭 위에 옷이나 모자 등을 무심코 벗어놓지 않도록 하고, 돗자리나 야외용 방석 없이 자리에 앉지 않도록 한다. 또한 사용한 돗자리나 방석은 꼭 세척한 뒤 햇볕에 말려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농작업을 마친 뒤에는 몸에 진드기가 붙어있지 않은지 확인하고, 깨끗이 목욕을 하여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한다. 또한 입었던 옷과 모자, 장갑, 수건 등은 2~3번 정도 털고 난 뒤 세탁한다. 가능한 작업복과 일상복을 구분해 입도록 한다.
진드기에 물린 것이 확인되면 섣불리 제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진드기는 흡혈곤충이기 때문에 한번 물리면 피부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이때 무리하게 당기면 진드기의 일부가 피부에 남아있을 수 있으므로 직접 제거하지 말고 의료기관을 찾아 제거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한 농작업을 마친 뒤 가벼운 증상이 나타났을 경우 그냥 넘기지 말고 야생진드기 매개감염병을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
농업인에게 가을은 유비무환의 계절이어야 한다. 바빠진 농작업으로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기에 미리 준비하고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 가을 부디 우리 농업인들께서 건강 챙기는 일에 소홀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