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수 <시민감사 옴부즈만·공학박사>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실제 그럴까? 해방 이후 대입정책이 바뀐 것을 보면 백년지대계는 말뿐이고 한 치 앞을 못 보는 형국이다.
1946년부터 1953년까지는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시험을 보아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인 대학별 단독시험제를 시행했고, 1954년에는 대학입학 연합고사가 시행되어 이를 통과한 학생만 대학별 고사를 볼 수 있게 했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는 다시 대학별 단독시험제를 시행했다가 1962년과 1963년에는 대학입학자격 국가 고시제를 두어 이를 통과한 학생만 대학별 시험을 보게 했다. 1964년부터 1968년까지는 또다시 대학별 단독시험제를 시행했다.
본 고사가 폐지된 1981학년도를 제외하면 1969학년도부터 1981학년도까지 예비고사를 두어 예비고사를 통과한 학생만 본 고사를 볼 수 있게 했다.
1982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는 학력고사와 대학별 고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했는데 1987학년도까지는 먼저 학력고사를 보아 점수를 확인하고 이 점수를 기준으로 대학을 지원해 시험을 치렀고, 1988학년도부터는 학력고사 점수 발표 전에 대학을 지원한 후 해당 대학에서 시험을 치렀다.
1994학년도부터 학력고사를 폐지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실시했는데 1994학년도에는 수능과 함께 대학별 고사를 보았으나 ‘본 고사 금지’ 정책에 따라 1997학년부터 지금까지 면접, 논술 등을 점수화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국방, 외교, 경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교육정책이다. 교육정책의 수장인 김상곤 부총리가 물러났다. 임기가 다 돼서 물러난 것 같지는 않다.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편안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에 “결정해 달라”고 떠넘겼고, 국가교육회의는 다시 시민 400여 명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로 결정하기로 했다. 시민참여단의 공론조사에서도 중3들의 대입 개편안이 결론이 나지 않자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극심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대입제도 개편안에 대해 교육부는 무대책 상태가 돼 버렸다.
이를 두고 한국교총은 “시민참여단이 입시 개편에 대해 이해와 전문성이 충분치 않아 전문적 판단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 중론이었는데도 교육부가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수능평가를 절대평가로 하느냐, 상대평가로 하느냐에 따른 장단점이 있고, 수시모집의 학생부종합전형(일명 학종)은 학교생활기록부(일명 내신)에 있어서 학교 폭력 가해 기록을 기록할지 여부, 수상경력, 동아리 활동 기록 여부 등 검토해야 할 사항이 하나둘이 아니다. 흔히들 문제를 풀려면 문제의 지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데 지문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문제의 답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대입제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유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달(月)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격이다. 더구나 지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대책을 강구 하려고 하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명문대학을 나와야 일류 기업에 들어갈 수 있고, 일류 기업을 다녀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조에서는 어떤 입시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학문을 하는 곳이거나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는 곳이 되려면 오직 좋은 직장만 들어가려고 대학을 다니는 세태가 사라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실질소득의 격차를 줄여야 가능할 것이다.
실질소득의 격차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가 세제 개혁이다. 많이 받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해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방법인데 대입정책의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