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질병방역과장>
지난 여름부터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가축 질병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은 인간에게 감염되지도 않는 질병을 왜 저렇게 비중 있게 다루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름에 ‘아프리카’라는 단어까지 붙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치사율이 100%에 이른다는 애기를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난 8월과 9월 우리나라로 오는 중국 선양발 항공기 편에 탑승한 여행객의 만두, 순대, 소시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유전자가 확인된 사실을 보면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와 교역이 많은 유럽에서 발생해 우리에게는 먼 얘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2007년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선박에서 나온 음식물이 조지아공화국 항구를 통해 돼지 농가에 유입되면서 유럽 전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다시 발생했다. 이후 2017년까지 체코, 에스토니아, 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폴란드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했고, 2018년에는 불가리아와 중국에서도 발생했다. 특히, 중국은 올해 8월 3일 첫 발생 이후 현재까지 10회 이상 발생했다. 우리나라가 안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주로 공항과 항만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를 돼지에게 주거나, 야생멧돼지의 이동, 돼지고기와 돼지 부산물의 이동을 통해 전파된 바 있다. 지난 8월 불가리아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국인 루마니아로부터 주요 전파동물인 야생멧돼지의 유입을 막고자 133km의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하였다. 하지만 8월 31일 루마니아 인접 돼지 농가들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덴마크는 질병 유입을 사전에 막기 위해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독일 국경에 70km에 달하는 철조망을 설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수십 또는 수백 km나 되는 국경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가면서 철조망과 울타리를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소규모 농가에서 대규모 농장에 이르는 양돈산업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크게는 발생국가의 식량 안정성 확보도 위협을 받아 사회 경제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이후 돼지고기 가격이 급등하였고, 사료로 사용되는 콩 등 농산물 가격은 급락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의 전문가는 중국과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하는 일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 방역 당국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국내 유입을 예방하고 만약의 경우 조기 종식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자 올해 2월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 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현재 시행 중이다. 특히, 8월 중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과 동시에 축산 관계자를 대상으로 발생 국가의 여행을 자제를 요청하는 등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양돈농가의 차단 방역을 강화하였고, 중국을 발생 국가에 추가하여 국경검역을 강화했다. 아울러 입국하는 항공기에 기내방송을 통해 축산물 휴대 반입 금지와 입국 시 자진신고를 독려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비행기와 배로 연결되어 물리적 거리가 무의미한 상황이다. 해외여행도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축산업 관계자가 농장의 차단방역을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축산과 관계가 멀다고 해서 방관해서도 안 될 일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이 무서운 질병을 우리 곁에 끌어들일 수 있음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