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말년 병장인 아들이 한 동안 전화가 없다. ‘파견 근무를 하는 아들이 국가를 지키느라 바쁘겠지’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럼에도 1주일에 한 번은 통화를 하던 녀석이 그래도 겁나게 좋다.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말년에 어려움은 없는지’, ‘이런저런 고민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래도 겁나게 좋다. 건강한 아들이 있고, 마음으로 그들과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있어 행복하고, 그래도 겁나게 좋다.
어느 날, ‘우연하게 만난 친구’가 그래도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보다는 그래도 겁나게 좋다. 다양한 방법으로 대학 시절 다정했던 친구를 찾아보았다. 그럼에도 10여년이 넘게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를 그리워하고 계속 ‘찾음’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래도 겁나게 좋다. 그래도 꼭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은 선배가, 후배가, 친구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무더위에, 개학에, 태풍에, 정신없이 시간이란 놈들이 하염없이 흘러가버렸다. 진도를 나가지도 못했는데, 2학기 1차고사가 다가오고 있다. 아이들은 시험이 걱정이다. 반면, 교사는 출제가 걱정이다. 그래도 시험이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겁나게 좋다. 시험을 보는 아이들이나 출제하는 교사 모두에게 분명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럼에도 ‘성적을 위한 시험’이 아닌 자신의 ‘성취과정을 체크해’보는 알찬 시험이 있어 그래도 겁나게 좋다.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어딘가 허전하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추석 연휴라고 들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인 듯 씁쓸하다. ‘풍요 속에 빈곤’이라고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기에 힘쓰고, 다양한 음식을 나누며, 술도 한 잔 기울이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도 함께하는 자리이기에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그래도 겁나게 좋다.
대한민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계절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장점이자, 지켜야 할 환경이다. 4계절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하기도 싫은 이유다. 그래서 4계절, 그가 다양한 얼굴로 대한민국을 성장시켜 주니 최고 중의 최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자연의 섭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것은 우리의 국민성과 닮아 있어 그래도 겁나게 기분이 좋다.
모처럼, 기름진 음식에 정성들여 준비한 떡과 과일 등을 양껏 먹을 수 있어 겁나게 좋다.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 때문에, 눈치 보느라, 맘껏 즐기지 못했던 음식들을 이번 한가위에는 ‘행복하게’, ‘즐겁게’ 흡입할 수 있어 정말 좋다. 어른들은 말한다. 무엇이든 다 ‘때(시기)’가 있다고 말이다. ‘즐길 줄 아는 것’도 다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맘껏 즐기는 인생마당이 있어 그래도 겁나게 좋다.
그래도 겁나게 좋다. 명절이면, 용돈을 받는 위치에서 작은 성의나마 보여야 하는 내 자신이, 그래도 겁나게 좋다. ‘주는 기쁨’, ‘나누는 정’이 이렇게 큰 것인지, 예전에 미처 모르고 살아왔던 내 자신의 부끄러움이, 그래도 겁나게 좋다. 많지는 않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풍성함에 그래도 겁나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