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옛 편지는 양반의 일상사에 관해 많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조선시대 양반문화에 있어서 편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무선 통신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의 편지란 단순한 의사소통 차원을 넘어 절절한 사연을 담아내는 도구이며 학문을 토론하거나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매체였다. 이 때문에 편지 내용의 다양성은 양반의 일상사 전반을 거의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 부안에 세거하던 부안김씨 집안에는 편지를 비롯하여 많은 고문서가 전해온다. 그 중 선박과 관련된 편지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조선시대 부안은 전략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연해 군·현 중 하나였다. 특히 광해군 시절 후금(後金, 훗날 청나라)과의 정세가 날로 불안했던 시기에 비상시를 대비하여 강화도가 만일 위태롭게 될 경우 옮길 곳을 물색하던 중 부안 지역이 진지하게 조정에서 거론되었다. 부안이 거론된 이유는 강화도에서 수로(水路)를 따라 아래로 내려오기 쉽고, 곡창지대인 호남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며 산을 끼고 바다를 등지고 있는 요충지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선박을 소유하고 운행함에 있어 상당한 재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선박은 해마다 관원이 직접 점고하는 등 국가에 의해 관리되었다. 즉 관아와의 밀접한 관계가 없으면 사실상 선박 소유 및 운행은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부안김씨 집안은 지역에서 권세와 재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부안에서 선박에 싣고 가는 가장 중요 물품은 미곡(米穀)이었다. 원래 미곡유통과 선박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양 고위관리가 소유한 부안 인근 농장의 세곡(稅穀)을 실어 보내는 데에 협조를 하는 대목이 편지에서 종종 보인다. 농업에 선박 운송이라는 유통은 조선후기 전국 해로(海路) 유통권의 발전과 궤를 함께 했다.
전국 중 전라도 해연로(海沿路)는 두 경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부안-만경-임피-옥구’로 이어지는 해로가 있었다. 부안김씨의 편지들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 양상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한양에서 부안으로 가져오는 물품 중 병풍(屛風)이나 철물(鐵物)이 있는데, 특히 부안김씨 집안에는 상당한 분량의 철물을 소유하고 있음을 왕복하는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선박 운송을 통해 상대적 교역 가치를 보상받았다.
또한 부안김씨의 선박은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일례로, 청하(靑霞) 권극중(權克中)은 병자호란 피란 과정에서 부안 김씨 집안의 선박을 통해 피신할 수 있어 감사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에 피란할 때 함께 한 배에 올라 탈 수 있도록 허락하니, 뼛속까지 입은 은혜에 깊이 감사해 필설(筆舌)로 형언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했다. 또한 부안김씨 김수종은 무장현으로 유배온 황선(黃璿)이란 친구를 위해 추운 겨울 선박에 땔감을 실어 자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옛 편지는 21세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선조들의 여러 생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옛 편지는 우리 선조의 삶과 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보고(寶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