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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걸으며



박여범 <용북중학교 국어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수필가>





시골길을 걸으며,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강아지다. 그 시골길의 강아지가 아장아장 나의 뒤를 따라 걷는다. 걷다 보면, 녀석이 자신의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심하게 걸었다. 한참을 걸어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들길에서 발길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녀석이 아직도 반갑게 꼬리를 친다. 그리고 뭐가 그리도 반갑고 신기한 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녀석을 어찌어찌 보내긴 해야겠는데,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한참을 그냥 그 자리에 머물렀다. 코스모스 추억을 되살리려던 나의 마음과는 달리, 그렇게 강아지가 나의 친구가 됐다.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는 시골길, 그 길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다. 나도 모르게 동네 중간쯤에 들어왔음에도 마을은 너무나 조용하다. 아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가끔 지나갈 것 같은 경운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이다. 어디에든 앉기만 하면, 누런 가을의 속삭임이 펼쳐지는 그림 속에 나와 강아지가 주인공으로 배치돼 있다.




 
강아지가 어딘가로 달려간다. 눈을 들어 논두렁을 바라본다. 어디서 모습을 드러냈는지, 어미 개 한 마리가 이쪽을 향해 으르렁댄다. 아마도 강아지의 어미인 듯하다. 난 아무 짓도 안했다. 그런데, 그 어미 개는 나를 보며 연신 짖어댄다. 녀석과 어미 개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에 미소로 함께 한다.




 
뒷짐을 지고 다시 시골길을 걷는다. 걷다 보니, 밤나무 아래다. 까칠한 밤송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고, 통통한 밤알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한 알 두 알 줍다 보니, 호주머니가 불룩하다. 나름 밤 줍기에 흥이 났다. 밤을 줍는 동안 마음은 이미 밤이 구워져 내 입속에 있었다. 밤알과 밤송이, 사이에 드문드문 호두가 떨어져 있다. 주변을 보니, 큼직한 호두나무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밤 줍기에 신경을 쓰다 보니, 동네 어르신이 지나가시는 것도 몰랐다. 우연히 마주친 눈빛으로 인사를 올린다. 다정하고, 포근한 미소가 더없이 정겨운 시간이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위태위태하게 걸어가시는 모습에서 부모님의 뒷모습을 떠올린 건 어르신의 정겨움 때문이다. 시골 어느 길이나 걷다 보면, 만나는 이러한 풍경들이 따뜻한 햇살에 눈부시다.




 
걷기를 좋아하는 직장 동료와 더불어 시골길을 만끽한다. 파란 하늘과 시원스레 펼쳐진 들녘이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끄적거리고 싶은 풍경이다. 눈이 호강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절실함’이 ‘여유로움’으로 바뀐다. ‘미운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 시골길 덕택이다.
 




시골길을 걸으며, 많은 추억을 만났다. 가을의 풍성함과 함께 한 강아지도, 코스모스도, 밤송이도, 호두나무도, 동네 어르신도,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으르렁대던 어미 개도, 솔솔 귓가를 간지럽히던 바람도, 새소리도, 아름다운 추억의 책갈피가 돼 버렸다.




 
코스모스가 아니어도, 어느 계절이나 시골길은 마냥 좋다. 내가 자란 그 시골길은 그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그 시골길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다. 두 눈을 감고, 아련한 시골길을 따라 걸어가 보자. 그 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어린 시절의 그리운 친구가 두 팔 벌려 반겨준다고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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